콜롬비아 '몸의 학교' 연습 장면. 이곳 학생은 "예술이 빵보다 중요할 때도 있어요. 춤을 통해 꿈을 갖게 됐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지훈 제공

- 현대사회의 스마트폰·SNS 환경
- 정보 과잉이 '감각 마비' 유발
- '신체 의식' 통한 지적 경험 중요
- 콜롬비아 예술 대안학교의 교육
- 빈민아동을 세계적 예술가 길러
- 자기존중 키우면 타인에게 확장
- 학교폭력·자기파괴 해법 삼길

순자(荀子)는 말했다.

"소인의 공부는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권학')

이것은 귀로 들은 지식을 조금도 되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얘기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어쩌면 오늘날 스마트폰과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환경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지.

현대사회의 정보 흐름은 차분히 살펴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바로 삭제하거나 바로 전달하거나. 정보 처리는 감각 반응처럼 즉각적이며, 감각 자체와 동일시된다. 귀에서 입으로, 눈에서 손가락으로. 그러나 이런 정보 처리의 과잉은 감성과 지성을 모두 왜곡시키며, 신경계를 피로하게 만들 수 있다.

■정보와 감각 과잉에 처한 사회

	콜롬비아 '몸의 학교' 공연 장면.

1896년, 독일 철학자 짐멜은 이 문제를 병리 차원에서 진단했다. 그는 베를린 무역박람회를 본 뒤 "다양한 산업 제품들을 빽빽이 모아놓은 방식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킨다"고 했다. 정보 과잉에 연관된 감각 과잉은 신경쇠약이나 대인공포증을 낳으며, 역설적으로 모든 감각에 무감각해지는 '감각 마비'를 낳는다는 거다.

현대사회는 이 무역박람회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이미 우리 사회는 웬만한 정보와 감각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좋지 않다. 감각 마비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순자가 보는 군자는 어떨까.

"군자의 공부는 귀로 들어와 마음에 뚜렷하고, 온몸에 퍼져 행동으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지행일치'로 풀이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기서 '온몸'은 부수적인 비유가 아니다. '체험' '체화'라는 말이 있듯이 지적 경험은 막연한 심리적 사건이 아니라 뼛골까지 내려가는 몸 전체의 사건이라는 뜻이다.

지적 경험과 온몸을 연결하는 건 '신체 의식'이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보여준 것처럼 기계적 노동을 하는 사람과 춤추는 사람, 또 차려 자세를 한 군인과 예술가의 신체 의식이 같진 않다. 더구나 입시 교육에 찌든 아이들과 들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신체 의식이 같을 순 없다.

■신체 의식의 차이는 세계관의 차이

몸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토대이다. 따라서 신체 의식의 차이는 세계관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럼 몸을 의식하고, 몸짓을 바꾸면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이처럼 순자는 몸을 통한 '체험'을 강조하며, 신체 의식을 지적 경험의 실천적 토대로 봤다.

문제는 모든 지식과 감각을 수용하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배움과 몸의 순환을 만드는 것. 이때 가치는 타인이 아닌 자신이 결정한다. 또한, 이때 몸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귀와 입'을 거치는 소음일 뿐이다.

순자는 말한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에 불과하니 어떻게 일곱 자의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옛날 사람들 공부는 자기를 위하는 것이었고, 요즘 사람들 공부는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다. 군자는 제 몸을 아름답게 하려고 공부한다."

파격적이다. 지적 경험의 목표가 '자기를 위함'이고 '제 몸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 남의 눈에 맞춘 삶을 택하는 대신 자신의 삶과 신체의 존중을 선언한 것이다. 여기서 '몸의 학교'(el Colegio del Cuerpo)를 떠올리게 된다. 1997년 콜롬비아 항구도시 까르따헤나에 설립된 예술 대안학교이다.

이 학교는 몸으로 지성을, 또 지성으로 몸을 바꾸려 한다. '통합신체교육'이란 교육철학으로 무용, 신체훈련 기법, 다양한 예술 장르 등을 핵심 교육 내용으로 삼는다. 아울러 철학, 수학, 영어, 사회 등을 비롯해 시민 정신, 성 정체성, 환경의식 등에 대한 예술적 감수성이 담긴 교육을 한다.

40년 내전으로 빈곤에 시달리며, 중고등 취학연령 절반이 공교육에서 배제된 콜롬비아. 하지만 '몸의 학교'는 이곳 빈민 아동들을 세계적인 예술가로 기르고, 빈민가를 예술의 요람으로 바꿨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학생 3000여 명이 참여하는 '내 몸, 내 집'(MA).

공동 설립자 알바로 레스트레포는 이렇게 말한다.

"몸 일부가 아프면 몸 전체가 고통을 느끼듯, 지구 저편의 기아와 전쟁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가르치고 싶다."

신체 의식에 바탕을 둔 자기 존중이 전 지구로 확장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덧붙인다. "몸의 학교에서 자신을 존경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바란다."

■좋은 몸짓에서 좋은 마음이

자신을 아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아낄 줄도 안다. 또한, 자신을 쉽게 파괴하는 사람은 남도 쉽게 파괴한다. 일본의 할복 문화와 폭력 문화가 동전의 양면인 이유이다. 자기 존중이 긍정적으로 확장하면 이타심의 가장 튼튼한 반려자가 된다. 이 긍정적 확장의 토대는 추상적 윤리가 아닌 신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배움과 몸의 순환이다.

지구 저편 콜롬비아와 한국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한국의 학교 폭력과 자기 파괴 행위들도 심각하다. 나아가 성인들의 신체 파괴 행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젠 정말 교육체계를 바꿀 때가 아닐까.

흔히 '공교육 강화'를 말하지만, 현재 한국 공교육은 강화보다 혁신을 요구한다. 정부가 사교육을 막고 공교육 예산을 늘린다 해도, 문제점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듯하다.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일찍이 순자가 생각했고, '몸의 학교'가 실행한 교육을 실마리로 삼으면 좋겠다.

순자는 "가르치지 않고 죽이기만 하면 형벌이 아무리 많아도 사악함을 이겨낼 수 없다"('부국')고 했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 폭력의 원인을 감각 마비에서 찾고, 자신과 신체 존중, 또 배움과 몸의 창의적 순환에서 출발하면 어떨는지.

부산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노 이원국도 한때 문제 청소년이었듯이, 기존 교육에 낙오된 아이들에게 예술은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몸의 예술은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좋은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바른 자세에서 바른 마음이 나온다고 하듯이, 좋은 몸짓에서 좋은 마음이 나올 수 있다.


# 순자

- 성악설 주장한 유가 사상가
- '현실주의자'로 실학 기초
- 인간 노력 통한 발전 강조

순자(荀子)는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403~221) 말기 유가 사상가이다. 사람 본성이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해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걸로 유명하다.

나이 아흔여덟에 수많은 저술을 남긴 채 눈을 감았다지만, 생애 기록이 거의 없다. 또 오늘날 전해지는 '순자' 20권도 제자와 후인들의 글이 다소 포함되고, 부정확한 부분이 있는 걸로 추정한다.

이런 이유는 송(宋)나라 이후 주류를 이루던 성리학이 성악설을 비난하며, 이단으로 여겼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성리학이 주도하기 전까지 유학은 순자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후 청(淸)나라 때 학자들은 다시 순자에서 실학의 기초를 찾았고, 그 뒤로 많은 연구가 이어졌다.

순자는 '현실주의자'이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선함을 부여받았다고 한 맹자가 하늘에 도덕적인 힘을 부여했지만, 그는 하늘이 순수한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성악설도 이 현실주의에 바탕을 뒀으며, 사회 문제를 하늘에 기대지 말고 인간 스스로 개선해 나가자는 관점이다.

다시 말해 성악설은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성인과 악인의 본성이 같다는 급진적 민주주의가 나온다. "길거리의 어떤 사람이든 우임금처럼 될 수 있다." ('성악') 누구나 노력에 따라 위대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