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을 섭외할 일이 잦다. 대체로 널리 알려졌거나 최근 화제작을 낸 분을 먼저 찾게 된다. 내용을 공개하는 프로그램일 땐 대중적인 지명도가 높거나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섭외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을 떠올리는 건 인지상정일 터. 이런저런 사연과 인연으로 알게 되고 친분이 돈독한 지인 중에서 마땅한 사람이 있는지 훑어본다. 다음은, 으레 한 다리를 건너본다. '아는 사람'과 친분이 있을 법한 사람을 물색하고 그들 사이의 '친분지수'를 확인한다. '아는 사람'이 아니고, '아는 사람'과도 아는 사람이 아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달리 방법이 없다. 무턱대고 전화를 걸 도리밖에 없다.

이럴 땐 전화를 해서 취지가 어떻고 명분이 어쩌고 설명을 하다 보면 자꾸 대화가 겉돈다. 수락하겠다는 말인지 사양한다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은 대답이 되풀이된다. 그러다 심사비 또는 강연료가 얼마라든가 하는 초청 조건으로 옮겨가면 협의는 급진전 되고 바로 직접적인 '협상'이 이뤄진다. 이쯤 되면 일단 요청을 수락하고, 시시콜콜 옵션을 제시하거나 오지랖 넓은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하지만 대체로 유용한 제안도 해서 몸값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이렇게 수세적으로 섭외해야 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영화 쪽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은 대체로 '작품' 이외의 일에 나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기 작품이 개봉할 때면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지만 다른 일에는 신중한 편이다.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속내는 좀 복잡하다.

영화의 산업적 규모와 저변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한국 영화의 주 무대는 사실 좁다. 한 사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고 기획에서 개봉까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린다. 다른 작품, 남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처지가 워낙 제각각이라 칭찬이 정작 당사자에겐 치명적인 화가 되기도 하고, 비판은 조롱이나 모함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심전심으로 서로 속사정을 양해하고 침묵하는 것이 예의라는 묵계가 부지불식중에 똬리를 틀고 있는 탓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부정적인 의미의 동업자 의식이 싹트고 암묵적인 카르텔로 자라 있다면, 비판과 평가에 쿨해질 수 있도록 일부러라도 볕을 쬐고 통풍을 시키는 일이 꼭 필요하다.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