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불이 모두 꺼진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가방을 내려놓고 냉장고를 열었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황색 조명도 켜지지 않았다. 전기 코드가 빠져 있나? 냉장고 뒤로 손을 뻗어 전기 코드를 확인했지만 문제가 없어 보였다.

　"수진이 왔니? 지금 정전됐다."

　"너무 어두운데…. 초 없어요?"

　나는 '정전'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초를 생각했다. 초? 엄마가 찬장을 열고 한참을 더듬더니 초 두개를 꺼냈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은 초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다. 와! 밝다. 촛불이 켜지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 거짓말처럼 걷혀 버렸던 것이다. 오히려 우리 집 형광등보다 더 밝은 것 같았다.

　전기가 돌아올 때까지, 약 두 시간 동안 초는 소리 없이 탔다. '팟' 소리가 나며 전기가 돌아왔을 때 초는 거의 다 타서 까만 심지와 굳어버린 촛농만 남아 있었다. 굳은 촛농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괜히 한 번 쓰다듬어 보았다.

　"초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 할 뻔했네."

　그 후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찾아오는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계속 그날이 생각났다. 내 생각은 거의 촛불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부엌이 확 밝아지던 그 순간이 계속 생각났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또 그 촛불을 생각한다.

　우리는 정전이 되면 촛불을 찾는다. 촛불은 찬장 안에서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촛불은 절대로 고장 나지 않는다. 조용히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약 육십 년 전,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셨던 분들도 우리의 촛불이 아닐까? 촛불을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묵묵히 자신을 태워 빛을 낸다. 그분들도 그렇다.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더하여 우리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우셨을 것이다. 칠흑 같이 어둡던 전쟁 상황에 그분들이 빛을 내어 주셨을 것이다. 촛불은 심지를 다 태우면 꺼지지만, 그 촛불 덕분에 세상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변함없다. 그분들은 돌아가셨지만 우리는 모두 그분들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전이 되면 촛불을 켠다. 예나 지금이나 촛불은 변함없다. 그저 빛날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초는 찬장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칠흑 같은 밤이 되면, 나는 또 촛불을 생각한다.

　나를 위해 타오르는 촛불을 생각한다. 그리고 육십 년 전의 밤에 타올랐던 무수히 많은, 또 무수히 밝은 촛불을 생각한다. 그리고, 또 정전이 된다면, 나는 촛불이 되고 싶다.

혜화여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