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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결성한 '들국화'. |
1980년대의 정오에 네 명의 더벅머리 청년이 한국 대중음악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연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류의 경기장에서 조용필이 분전하는 동안, 냄새나는 지하 연습실과 파고다 극장 같은 열악한 소극장에서 칼을 벼려온 이 비주류의 전사들은 한국판 '언더그라운드'라는 질풍노도의 깃발을 막 올린다.
방송국의 PD들이 장악하고 있던 살생부의 권위를 무시한 채 이들은 끝없는 소극장 콘서트와 바로 이 앨범만을 달랑 지니고 복마전의 지뢰밭을 정면돌파한다. 그리하여 들국화는 같은 해 절치부심의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김현식과 함께 이 게릴라 전투의 쌍벽을 이루는 선봉장으로 떠오른다. 삼저 호황이라는 경제적 여유 위에서 도전적인 새로움을 갈급하고 있던 십대와 이십대 전반의 수용자들은 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고, 1975년 이후 기나긴 매너리즘의 터널 속에 움츠리고 있던 이 땅의 대중음악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
이는 1970년대 전반 김민기와 신중현의 출현 이후 십 년만에 맞은 한국 대중음악의 소중한 승리였다. '동아기획' 군단으로 명명된 이들이 등장함으로써 주류와 비주류는 견제와 균형의 이인삼각 경주를 펼치게 되었고, 비록 소극장 규모에 한정되긴 했지만 라이브 콘서트의 집중적인 생명력이 존중받는 기틀이 다져졌다. 또한 '아티스트'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최소한의 증명서인 싱어송라이터의 가치가 재평가되었으며 송골매 정도를 제외하면 고작 나이트클럽 무대를 전전하면서 기약 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던 밴드 문화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치며 '행진'하고자 했던 이들의 디스코그래피는 단 두 장의 정규 앨범으로 허망하게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이십오 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건반 주자 허성욱은 불귀의 객이 되었고 무대 위의 사자 전인권은 연이은 마약 스캔들로 황폐하게 무너졌으며, '그것만이 내 세상'과 '매일 그대와'의 작곡자이기도 한 최성원은 90년대 패닉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지만 대부분 시간을 은둔으로 보냈다.
전인권과 최성원, 그리고 드러머 주찬권은 2001년 그들을 위한 트리뷰트 앨범이 제작되었을 때 들국화의 이름으로 재결성의 조짐을 보였지만 실현되지는 못했고, 이제 모두 이순을 앞둔 나이에 이르러서야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대구를 시작으로 재결성 공연을 개시했으며 조만간 새로운 앨범이 발표될 예정이다.
그저 어제의 영광을 반추하자고 사반세기 만에 이들이 다시 만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들은 신중현과 엽전들 이후 한국 최강의 밴드였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수많은 음악 청년들의 표상이 되었던 존재들이다. 이들의 재결성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꽃피우기 위해 좌충우돌하고 있는 이 땅의 젊은 밴드들에게 노병의 웅혼한 기백을 음악으로 보여주어야 할 의무를 안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충일한 음악 정신의 시대였던 1980년대의 가치를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나직이 읊어주어야 한다.
시대는 변했고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이 외로이 보여주고 있듯이 음악적 공감에는 국경과 생물학적 연령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것을 뛰어넘는 것, 그 것이야말로 예술가들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