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여름공연예술제 개막작 뮤지컬 '이순신'의 한 장면. 정철욱 기자

-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개막작 '이순신' 리뷰
- 예산 39억 들여 제작 대형 뮤지컬
- 박진감 넘치는 해전 장면과 함께
- 충무공 내면 속 인간적 면모 관찰

지난 20일 제12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17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축제가 열리는 밀양시 부북면 밀양 연극촌은 이름 그대로 연극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도로 옆으로 난 좁은 길을 걸어 들어가자 후덥지근한 날씨를 잠시 잊게 하는 연밭이 펼쳐졌다. 시골의 정취를 한껏 느끼며 연극촌으로 들어서자 곧장 웅장한 성벽극장이 눈에 들어왔다. 성벽극장과 주위를 둘러싼 다른 극장들은 연극촌이 바깥세상과 단절된 공간처럼 느껴지게 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뿜어냈다.

축제의 막은 연희단 거리패의 창작뮤지컬 '이순신'이 열었다. 2009년 경상남도가 진행한 이순신 프로젝트의 하나로 39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제작된 대형 뮤지컬이다. 3년 동안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성됐다.

막이 열리고 만난 이순신은 불패의 장수가 아닌 24명의 식솔을 거느린 아버지의 모습이다. 청절제사로 추천받은 이순신을 감사하러 온 어사는 남솔(수령이 가속을 제한 이상으로 데려가는 것)이라 지적하며 "관직에 있는 자가 식솔을 너무 많이 거느리면 어찌 청렴할 수 있겠는가"라고 꾸짖는다. 높은 관직에 나아가 나라를 지키고 싶은 욕망과 핏줄의 목숨을 보전해야 하는 의무 사이에 놓인 이순신의 모습은 완전무결한 존재로 여겨지던 인식을 비켜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조선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이 대마도주 종의지의 안내를 받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 후 귀국하여 왜의 침략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며 시작된다. 전쟁이 발발하자 1년 전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옥포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사천해전, 한산대첩 등 연전연승하며 전세를 단번에 역전 시킨다. 무대 앞의 공간을 물길 삼아 거북선, 판옥선이 오가고 그 위에서 힘차게 노래하는 모습과 왜군이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조선군은 상모를 돌리는 듯한 동작으로 왜군을 제압하는 장면은 거침없는 기세와 용맹함 느끼게 한다.

연승을 거듭하는 이면에는 연일 거듭되는 전투에 약해지고 전장의 광기에 빠져 악몽에 시달리는 이순신의 모습도 담겨있다. 이렇게 영웅 이순신의 내면에 있는 인간적 면모를 관찰하면서 드러내는 것은 전쟁과 인간, 권력과 민중, 삶과 죽음 같은 사회와 인간의 본질이다. 전장의 삶과 죽음, 공포와 환희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은 이순신을 영웅에서 인간으로 끌어내려 동질감을 주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밀양을 찾은 정영원(65) 씨는 "공연이 박진감 있으면서도 이순신 장군의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1500석의 객석이 거의 들어찼고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으나 제10회 축제에서 개막작으로 공연됐던 작품이 불과 2년 만에 다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