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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시장에서 선전하는 국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
2001년이 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뮤지컬은 한마디로 변방 중의 변방의 장르였다. 연간 시장 규모가 고작 수십억 원 정도인, 그저 연극에서 파생된 마이너 무대 흥행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무려 100억 원의 제작비와 마케팅비를 투입한 세계 메이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명품' 공연 상품으로 탄생하면서 장기 공연의 기틀을 만들었고 200억 원이 넘는 입장 수입을 기록하면서 한국의 뮤지컬은 드디어 산업의 차원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11년, 한국은 연간 무려 700여 작품이 만들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뮤지컬 국가로 부상했다. 그 과정에서 뮤지컬 제작사 에이컴의 '명성황후'는 거의 국민 뮤지컬 수준의 대접을 받기에 이른다.
어느덧 뮤지컬은 공연산업의 전통적인 중심이었던 콘서트 시장을 밀어내고 한국 공연시장의 6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연간 시장 규모도 2000억 원을 넘어섰다. 물론 세계 1위의 미국 시장과 비교하면 거의 40분의 1 수준이고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아직 10분의 1 정도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고속 성장은 약동하는 한국 문화산업의 열기를 엿보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포털 사이트에 뮤지컬 커뮤니티가 2500개에 육박하고 한 작품을 삼사십 번씩 보는 이른바 '뮤폐족'(뮤지컬 폐인의 준말)이라 명명된 극렬 마니아층까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요즘의 추세를 보면 괄목상대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아이돌 걸그룹 출신인 옥주현이나 연기와 뮤지컬을 오가는 조승우 같은 뮤지컬 슈퍼 스타도 탄생했고, 웬만한 톱배우 톱가수들도 뮤지컬의 초대에 기꺼이 임한다. 그리고 K-pop의 인기에 힘입어 아이돌 그룹의 스타들이 출연하는 뮤지컬엔 작게는 10%에서 많게는 40%까지 외국 관객이 객석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격세지감까지 일 지경이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에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마련인 어두운 그늘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장 결정적인 그늘은 한국 뮤지컬 산업에서 여전히 외국 대작의 라이센스 뮤지컬이 압도적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팝송'이 지배했던 대중음악, 할리우드 영화가 지배했던 영화 부문의 역사를 떠올리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아직 창작 뮤지컬의 레퍼토리라고 한다면 장유정 감독이 특유의 감각으로 만들어 10년 가까이 롱런하고 있는 일련의 소극장 뮤지컬이나, 지자체들이 자체 콘텐츠 개발이라는 환상으로 만드는 공적인 이벤트성 뮤지컬이 다수를 이루는 실정이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 PMC가 드라마 한류의 붐에 기대 5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하여 의욕적으로 만든 '대장금'이나 외국 대작 뮤지컬의 수입으로 많은 돈을 번 신시컴퍼니가 의욕적으로 투자한 '댄싱쉐도우'가 거둔 어이없는 흥행 참패는 한국의 독자적인 뮤지컬의 현 수준을 냉엄하게 보여준다.
그러는 중에도 미국과 일본 시장에 과감한 도전장을 내민 '마리아 마리아'가 한발짝씩 성취하고 있는 광경을 우리는 보고 있다. 과연 누가, 어떤 작품이, 어느 제작사가 영화의 '쉬리'나 SM 엔터테인먼트 같은 킬러 콘텐츠가 될 것인가를 지켜보는 것도 정말이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