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할머니의 김치처럼 포근하게 느낄 수 있을까.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 1:15)

성품이 조금은 예민하셨던 친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늘 남달랐다. 특히 김치 맛이 일품이셨다. 6·25전쟁 때 경기도에서 피란 오신 할머니는 새우젓으로 김치를 담가 드셨다. 냉장고가 없던 피란시절, 그렇게 첫 김장을 하셨다가 하루 만에 김치가 다 쉬어버렸다고 한다. 부산의 기후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성욱아! 서울로 공부하러 가면 할머니가 따라가서 김치 만들어 줄게." 식당에서 김치 투정을 하는 손자에게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익숙하지 아니함을 뜻하는 '낯섦'의 체험들은 고향을 떠나야만 경험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우리는 고향이라 불리는 이 땅에서도 낯섦을 체험한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거룩한 목마름을 가지고 살기 때문인데, 헨리 나우웬 이후 대표적인 가톨릭 영성 작가로 알려진 로널드 롤하이저는 인간의 성(性)을 '단절되다'는 뜻인 라틴어 세카레(secare)로 설명했다. 천국의 삶을 영위하던 인간은 죄를 짓고 쫓겨난 후부터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요한 15:4)는 말씀대로 그분께 붙어살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인간은 단절된 상태에서 다시 하나가 되고 싶은 에너지를 섹슈얼리티로 표현한다.

예전에 청년들과 성경 나눔을 위해 사용했던, 케빈 페로타의 '마르코 : 예수 알아가기' 첫 번째 소제목이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이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 1:15). 케빈 페로타는 이 성경 말씀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께서 직접적인 방법으로 인간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선포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토록 우리의 삶에 깊이 개입하고 계신다면, 우리는 왜 그 손길을 낯설게 느끼는가? 그리스도교 신앙은 온갖 장애물로 인간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장애물들을 교회에서는 '죄'라 부르고, 죄로 말미암은 삶의 방식에서 그분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신앙행위를 '회개'라 부른다.

가톨릭 전례의 주기에 따라 읽는 연중 1주간의 복음 말씀도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연중 1주간 월요일 복음)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 신앙의 최종 목적지가 하느님 나라이고 지금은 지상 여정 중에 있음을 고백한다. 하느님 나라로부터 떠나온 사람들이라서 세상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낯섦을 체험하지만, 타향살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희망이 된다. 우리에게 감춰진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이미 도래했고, 앞으로 그 낯섦이 회복될 것이기 때문인데, 우리 주변에는 이미 그 복음을 살고자 힘쓰는 분들이 많다.

문제는 오늘 나에게 작용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어떤 변화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가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많은 사람은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다"고 대답하겠지만, 이제부터는 나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오늘 내 삶에 역사하실 것을 믿는다면, 익숙하지 않은 이 땅에서 나는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 참으로 다행인 점은 낯선 이 땅에서도 우리의 마음 어디엔가는 단절되기(secare) 이전의 고향 맛이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욕쟁이 친할머니의 김치 맛을 지금도 그리워하듯 말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