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신앙인에게 깨어있음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옴을 기다리는 일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 1:15)


물을 사서 마신다거나 집에 정수기를 설치했다는 말이 낯설던 시절, 새벽잠이 많던 초등학생인데도 새벽마다 물통을 들고 약수를 뜨러 다닌 적이 있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 일이 즐거웠던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올해도 어김없이 신학교에 새내기들이 입학했다. 가톨릭 교회의 사제가 되고자 하는 스무 살 남짓 신학생들의 앳된 모습을 보자면 대견스러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젊은 수도자가 연세 지긋한 사막의 은수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제가 무엇을 하면 하느님 현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스승의 대답은 이러했다. "당신이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조절할 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런 확신도 가능할 것입니다."

자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면 굳이 기도 수련을 매일같이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 젊은 수도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 저희는 왜 새벽부터 기도훈련을 해야 합니까?" 이때 스승의 대답은 "기도 훈련은 필요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네 힘으로 조절할 수는 없지만, 태양이 언제 뜨는지, 그 태양이 다가오는 순간을 깨어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에 많은 종교는 구도의 삶을 가르치지만, 그리스도교가 이들과 구별되는 점은 하느님의 주도 하심이다. 그리스도인이 믿어 고백하는 하느님은 친히 인간이 되어 찾아오셨을 뿐 아니라 자력으로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죄의 상태에 머문 인간을 구원해 주셨다.

예전에 청년들과 성경 나눔을 위해 사용했던 케빈 페로타의 성경 6주간 교재, '마르코 : 예수 알아가기'의 소제목은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이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핵심인데, 그 희망의 나라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도달하는 어떤 곳이 아니라 진정 '다가오는' 나라이다.

주님의 기도에도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이렇게 기도한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그리스도인 신심 생활의 노력은 다가오는 하느님 현존의 순간에 깨어있기 위함이다. 그래서 케빈 페로타의 성경나눔의 시작 질문은 이랬다.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즐겁습니까? 일찍 일어나긴 하지만 일찍 잠자리에 듭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잠자리에 머뭅니까?" 이 질문의 요지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깨어있음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믿어 고백하는 하느님은 인간역사에 직접 개입하고 다가오시는 아주 친절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할 일은 어쩌면 고작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맞이하며, 그분의 주도 하심을 알아채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일이다.

초등학생 시절,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정말 즐거웠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새벽같이 떠온 약수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드시며 "우리 손주 애썼다" 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넉넉한 웃음과 한마디의 말씀이 다가오는 순간, 바른생활 초등학생은 그 순간이 너무도 기뻤다.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 때문에 그리고 넉넉하게 미소 짓는 예수님의 웃음 때문에, 그 느낌을 알기에, 솔직히 힘겨울 때가 더 많으면서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즐겁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오늘도 신학생들과 함께 새벽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