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고질라'. 일본 영화 '고지라' 탄생 60주년에 만들어져 그 의미가 각별하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철 지난 영화를 곱씹으면 어떤 맛이 날까.

본지는 '시네마 리바이벌' 시리즈를 매주 한 차례 게재한다.

이 시리즈는 지나간 영화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되살리며 현재 관객과 연결한다.

그 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화두를 독자와 함께 찾아본다.


- 방사능 유출 폐쇄된 원전서 성장
- 괴물 탄생은 변방·지하서 이뤄져
- 외계 존재 아닌 기술문명 부산물

- 근대 도시는 폐기물·위험물을 시야권 밖으로 보내 청결 유지

- 버려지고 숨겨진 모순·부조리
- 가시적인 '기호'로 드러난다면 재앙 피할 기회가 될지 모른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2014)는 한 편의 거대한 오마주(homage)라 할 수 있다. 이전에 저예산 괴수 영화 '몬스터즈'(2010)를 통해 같은 장르에 애정을 드러낸 바 있는 감독은 이 영화를 일본에서 만들어진 오리지널 '고지라'(1954)와 이후 28편까지 이어진 시리즈의 전통을 재현하는데 바친다. 공교롭게도 이번 리메이크 영화가 공개된 시점이 '고지라' 탄생 60주년이 되는 해이니 시의적절한 헌사였다.

오리지널 '고지라'는 현대 괴수 영화의 표현과 관습을 정립한 기념비적인 영화로 꼽힌다. 괴물의 출현과 도시의 파괴, 혼란에 빠진 군중과 괴물의 퇴치 등 '고지라'에서 정립된 공식은 21세기에 와서도 멧 리브스의 '클로버필드'(2008)나 봉준호의 '괴물'(2006) 등에 그대로 적용됐고 새로운 '고질라' 영화도 이 도식을 고스란히 따른다. 괴물이라는 이질적 타자의 등장과 그로 인해 촉발되는 상상적 공포. 그러니 수없이 반복된 이 영화적 관습에 주목할 만한 일리(一理)가 숨어있다고 짐작해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단순히 B급 장르 오락으로 취급되어온 괴물 영화, 이 지극한 통속성에 인문학적 시선의 진지함을 들이댈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모든 괴물엔 기원(起源)이 있다

어느 괴수 영화를 보더라도 반드시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괴물이 등장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괴물(怪物)이라는 비정상적 타자의 등장은 어떤 계기 없이 촉발되지는 않는다. '고질라'에서 악역을 맡은 괴물 '무토'는 방사능 유출 사고로 폐쇄된 일본의 원전에서 고치 상태로 잠들어있다 깨어난다. 한 쌍인 다른 무토는 사막 한가운데 놓인 미국의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에서 성장해 수컷의 부름을 듣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며, 미군은 이 괴물을 유인하기 위해 핵무기 수송작전을 벌인다. 이처럼 리메이크 '고질라'는 괴물의 탄생과 핵의 관련성을 거듭 일깨운다.

숱한 괴수 영화에서 괴물의 탄생은 항상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변방이나 지하에서 이루어졌다. 근대 도시의 정상성으로부터 버려진 어둠의 공간들. '엘리게이터'(1980)의 괴물 악어는 제약회사의 실험 과정에서 폐기된 개들을 먹고 성장했으며, '괴물'의 괴생명체는 미군이 몰래 한강에 방류한 포름알데히드와 각종 도시 폐기물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돌연변이였다. '고질라'의 괴물 무토 역시 마찬가지다. 이 괴물들은 외계의 존재가 아니라 기술문명이 빚어낸 부산물이다.

■돌아온 괴물, 폭로되는 근대성

우리는 이 지점에서 괴물을 통해 '드러나는(poiesis)' 근대성의 일면을 포착할 수 있다. 근대 도시의 형성은 우리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것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감추고 그에 관해 무신경해지도록 조장해왔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전기를 편리하게 사용하지만, 전기를 생성하는 원리나 발전소의 운영 실태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도시의 번영은 항상 막대한 양의 전력을 필요로 하지만 정작 발전소는 도시의 외곽, 변두리에 배치돼 있다. 도심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걸 상상해볼 수 있는가? 쓰레기 폐기장이나 소각장을 시민의 일상적 생활 영역 안에 배치하는 걸 반길 수 있는가? 근대 도시의 설계는 항상 위험하고 더러운 것, 우리가 알게 되면 불편할 것들을 변방으로, 우리의 시야 밖으로 추방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져 왔다. 겉으로는 깔끔하지만 그런 도시의 청결은 실상 우리의 생활권, 가시권 밖으로 추방한 결과로 얻어진 이중성의 산물이다. 언제나 '풍경은 기원을 은폐'(가라타니 고진)한다.

당장 눈앞에서의 청결함, 편리함만을 추구한 이런 발상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환경오염과 기상이변, 급작스러운 재난의 발생은 사실 그 원인을 들추어보면 그동안 누적된 모순과 부조리가 빚어낸 바 아니었던가? 근대 도시 문명이 일상의 시야 밖으로 추방한 온갖 부산물, 폐기물이 위협적인 형태로 돌아오는 이 귀환(歸還)의 형식은 공교롭게도 괴수 영화의 공식(formula)과 정확히 일치한다. 도시의 어둠 속에서 태어난 괴물은 반드시 도시로 돌아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지 않았던가? 괴물은 우리 일상에는 쉽게 노출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언젠가는 곪아 터지는 화농처럼 재앙으로 닥칠 잠재적 위험에 대한 영화적 반영이자 은유가 된다.

■탈은폐(aletheia)하는 괴수

'기술과 전향'에서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을 '그 자리에 없던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Her-Vor-bringen)'이라고 규정했다. 감추어진 것을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탈은폐(aletheia) 또는 폭로하는 것, 비가시적인 진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그 무엇을 기술이라 부른다. 그런 점에서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는' 괴수 영화의 서사 전개 방식은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기술의 본질과 일맥상통한다. 괴물의 출현은 우리에게 그것의 기원을 질문하게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버려지고 은폐된 불편한 '진리'를 마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감추어진 것치고 드러나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장자)고 했듯이, 알기를 거부하고 우리 삶의 영역에서 밀치면 밀쳐낼수록 그 '진리'는 더욱 폭력적이고 한껏 일그러져 낯선 형태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만약에 괴물을 단순히 영화 속의 존재, 혹은 적대적 타자로 치부하지 않고 어떤 진리를 감추어둔 기호(sign)로 대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구원의 목소리'(하이데거), 구원의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겠는가? 눈과 귀를 열고 괴물의 존재와 그것이 환기하는 근대 문명의 그림자, 도시의 어둠을 응시할 수 있다면 우리에겐 재앙을 피할 전환의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폐허가 된 도심에 울려 퍼지는 괴수의 포효(咆哮), 그건 아마도 절멸의 위기를 사유하라는 경고의 신호(sign) 아니겠는가.


# 영화 '고지라'는

- 혼다 이시로 감독 역작…'용가리' 등에 큰 영향

혼다 이시로 감독의 '고지라'(1954)는 '킹콩'(1933)과 더불어 괴수 영화의 기념비적인 역작으로 손꼽힌다. 원자폭탄 실험의 여파로 잠에서 깨어난 고지라가 도쿄에 상륙해 시가지를 파괴하며 혼란에 빠트리지만, 젊은 과학자 세리자와가 신무기를 개발해 격퇴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대괴수 용가리'(1967)가 영향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퍼시픽 림'(2013)의 엔딩크레딧에서 '레이 해리하우젠과 혼다 이시로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헌정 의지를 밝혔다. 참고로 고지라(ゴジラ)라는 괴수의 이름은 고릴라(ゴリラ)와 고래를 뜻하는 쿠지라(クジラ·鯨)의 합성어이다.

조재휘·영화평론가

▶조재휘=2009년 제7회 기독교영화제 비평섹션 최우수상 수상으로 영화 평론 시작.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대중화위원회 진행위원 참여. 현재 부산영화예술포럼 플럭스(Flux)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