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정태규(사진 가운데 휠체어 탄 이) 작가와 부산 문우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 톡톡'이 지난 20일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앞쪽 왼쪽부터 정인 소설가, 전성욱 평론가, 강동수 소설가.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요산문학축전 '문학 톡톡' 행사
- 무대 나선 강동수·정인 소설가
- "사회 화두 녹여낸 작품에 충격"

- 루게릭병 투병 정 작가가 쓴
- 첫 소설집·평론집 출간 축하

지난 20일 오후 7시 짙은 어둠에 파묻힌 부산민주공원 로비가 순식간에 왁자지껄했다. 부산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원로·중견 작가 70여 명이 휠체어를 탄 사람을 둘러싼 채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다. 아무 말 없이 휠체어에 앉아 눈빛으로 반가움을 표시한 이는 부산작가회의 회장과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정태규(57) 씨. 2012년 가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2년 가까이 투병 중인 중견 소설가다.

이날 제17회 요산문학축전(18~25일)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정 작가와 문단 교우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 톡톡'이 열렸다. 최근 그의 첫 번째 소설집 '집이 있는 풍경'의 개정판 '청학에서 세석까지'와 첫 평론집 '시간의 향기'가 출간돼 이를 축하하는 의미를 더 했다. 머리를 고정해 앉기조차 힘들어하는 정 작가를 위해 부인과 지인들은 몇 번이나 이쪽, 저쪽으로 머리 각도를 옮겨가며 편안한 자세를 잡게 도왔다.

무대에 나선 이는 강동수 소설가, 정인 소설가, 전성욱 문학평론가. 모두 10년~20년 우정을 이어온 문학의 지음(知音·친한 벗)들이다. 먼저 강 소설가가 마이크를 들었다. "정 선배를 알게 된 게 햇수로 23년쯤 된 것 같다. 국제신문 문학 기자였는데 신춘문예 등단의 꿈이 있었다. 문단 돌아가는 얘기도 들을 겸 맥줏집에서 봤는데 그렇게 죽이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4~5시간 술을 마시다가 둘이서 뽀뽀를 했다. 달콤한 첫 키스의 추억 때문에 지금도 술에 취하면 동료, 후배 남자들에게 뽀뽀를 날려 원성을 사곤 하는데 모두 태규 형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맞은편에서 이야기를 듣던 정 작가의 얼굴에 함지박만 한 미소가 번졌다.

정인 소설가는 "부산소설가협회에서 운영하던 소설학당 시절에 처음 뵀고, 첫 작품을 보인 분이다. 수업시간에 어찌나 제 작품을 혹평하던지 정말 속상했다. 술자리에서 '잘 좀 고쳐 봐라'고 격려해 주셨는데 옆에 계신 소설가가 '엄청난 칭찬'이라고 말해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이도 나랑 같고, 촌수를 따지니 내가 할매뻘이더라"고 웃었다.

마이크를 잡은 세 사람은 정 작가의 명징하고도 투명한, 사회의식이 투철한 첫 작품집에 놀라움과 존경을 나타냈다. 강 소설가는 "다양한 당대의 사회적 화두를 어떻게 한 작품에 묶어낼 수 있는가"를 부러워했고, 정인 소설가는 "방망이로 머리를 얻어맞는 충격"이었다고 고백했다.

뒤이어 소개된 영상물에서는 "작가들이 뽑아서 주는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을 받은 정 작가에게 질투가 나 혼났다"는 조갑상 소설가, "당장은 없는 것 같아도 속이 꽉 찬 '허허실실'같은 사람이다. 지금도 허허실실 전법을 쓰지 않나 싶다"는 동길산 시인 등이 사랑하는 후배, 벗의 건투를 빌었다.

극단 해풍이 정 작가의 작품('누가 용을 보았는가')을 극화한 연극과 뒷풀이까지, 밤 10시까지 이어진 문우들의 뜨거운 우정에 마음이 데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