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 센터의 전경. 건물과 정원이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석유재벌 폴 게티가 세운 재단
- 1조3000억 들여 게티센터 건립
- 생전 수집한 예술품 무료 공개

- 철도·부동산으로 부 쌓은 헌팅턴
- 예술품과 함께 책 수집에 열중
- 도서관과 15개 정원 꾸며 개방

최근 LA를 찾는 관광객의 방문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명소가 있다. 바로 게티 센터다. 할리우드 거리가 영화 도시 LA의 전통을 상징한다면 1997년 문을 연 게티 센터는 문화 도시로 떠오르는 LA를 드러내는 거대한 박물관이다.

	헌팅턴 도서관 전경.

게티 센터의 유명세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LA에는 세계적인 명소로 손색없는 곳이 하나 더 있다. 헌팅턴도서관·갤러리·식물원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진 헌팅턴 도서관이다.

게티 센터와 헌팅턴 도서관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두 곳은 워낙 유명하고 각종 포털사이트에 많이 소개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대신 누가,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산타모니카 해변 인근의 언덕 위에 있는 게티 센터는 석유재벌 진 폴 게티(1892~1976)가 세운 게티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재단을 설립한 게티는 석유로 막대한 부를 쌓아 1950년대 세계 최고 부자로 손꼽혔다.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면서 딱 두 가지, 석유와 예술 작품을 찾았다. 게티는 서구 왕실과 귀족적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 18세기 유럽 왕실의 가구들을 사 모았다. 기업가로서 게티는 악랄하다는 평을 들었고 자선활동에도 인색했다. 자신의 손자가 유괴범에게 납치됐을 때 협상을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헌팅턴 도서관의 15개 가든 중 일본 가든. 영화 촬영이 이뤄질 만큼 인기다.

여기까지 보면 게티는 자신의 이익만 좇으며 고상한 취미를 즐기는 악덕 기업가의 전형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갔다. 1974년 말리부 해변 인근 자신의 저택을 전시관으로 개조한 게티 빌라를 열고 예술품을 일반인에 공개했다. 1976년 죽기 전에는 예술품과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재단에 기증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재단은 좁은 게티 빌라를 대신할 게티 센터를 건설했는데 무려 1조3000억 원이 투입됐다. 게티 센터는 LA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자리 잡았으며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그 자체로 예술작품인 건물과 그 속을 가득 채운 엄청난 예술품 그리고 서부 LA와 산타모니카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게티 센터는 게티의 유언에 따라 입장료가 따로 없다. 생전 그를 비난했던 미국인이 사후 그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했을지 짐작이 된다.

헌팅턴 도서관은 헨리 에드워드 헌팅턴(1850~1927)이 만들었다. 그는 1900년대 초반 철도사업과 부동산개발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 역시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고 60세가 됐을 때 은퇴를 선언하고 작품 모으는 데 전력했다. 헌팅턴의 수집 대상은 게티와 약간 달랐다. 그는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특히 책을 모으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처음 인쇄한 성경, 셰익스피어 초판본, 링컨의 자필 편지 등을 헌팅턴 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 또 하나, 헌팅턴은 식물 가꾸는 것을 좋아해 헌팅턴 도서관에는 15개의 정원이 있다. 헌팅턴도 재단을 만들어 재산과 예술품들을 기증했으며 1919년 자신의 집을 꾸며서 만든 헌팅턴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특이한 점은 헌팅턴 도서관은 면적이 무려 82만6000여 ㎡(약 25만여 평)인 데 비해 개방 시간은 하루 최대 6시간에 불과해 모든 것을 보려면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해야 한다. 게티와 달리 입장료를 받지만, 한해 50만 명 이상 방문할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게티 센터와 헌팅턴 도서관을 이야기하면서 기업가로서 그들의 모습은 꺼내고 싶지 않다. 대신 기업가가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회가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말하고 싶다. 게티와 헌팅턴은 예술품을 보물창고에 숨겨두고 자기만 즐긴 것이 아니라 대중과 공유하면서 사회 전체에 문화 향기를 선물했다.

물론 이런 일은 기업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예술품은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눌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는 것이다. 죽은 게티와 헌팅턴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