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둥지를 튼 지 3년째다.

그동안 숲에 정이 들고 나무가 가리는 하늘에 제법 익숙해졌다. 얼마나 좋은가? 산, 생각만 해도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계절이 바뀔 적마다 신선한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마음은 더불어 맑아진다.

그러나 산속을 걸으면서 이 동네가 마냥 천진하고 한가하지만 않은, 이 속에서 뭔가 처절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식물은 땅에 뿌리를 두고 해를 보며 산다. 식물이 땅을 떠나거나 햇빛을 만나지 못하면 죽는다. 그러니 좁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한없이 뻗어 간다. 그러다 해를 볼만한 곳까지 다다르면 한껏 가지를 펼치며 햇빛을 독점하고자 한다. 어떤 종은 스스로 힘으로, 또 어떤 종은 다른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로 자라 마침내 그 나무 전체를 뒤덮으며 햇빛을 독점하기도 한다.

동물은 불리하면 장소를 옮겨 살지만, 식물은 한 번 뿌리 내린 곳에서 줄곧 하늘을 향해 뻗어 마침내 햇빛을 만나지 못하면 그냥 왜소하게 살거나 죽을 따름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평온할 것 같은 이 숲 속이 가장 처절한 경쟁터이며 시시각각 처절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른다.

사람이 자유를 얻고자 함도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자유를 얻은 사람은 구태여 답답한 조건을 견디며 억울한 상황을 참거나 까닭없는 사투를 벌일 필요가 없지만, 한정된 공간과 처지로 인해 우리는 경쟁에 내몰린다.

사람의 정신 내면도 마찬가지다. 정신이란 몸처럼 고정된 것도 아니고 온갖 생각이나 감정을 일으키고, 잦아들게 할 수도 있으며, 무슨 일이든 정성을 들이면 이뤄지게 할 수도 있고, 없애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 그 깊숙한 곳에 들어가 보면 자유라기보다는 이 알뜰한 구속들에 마치 저 숲 속 나무들의 세계처럼 처절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어려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가치관과 감정, 습관, 삶의 양식에 따라 서서히 그리고 철저히 자기 가치체계가 만들어진다. 물론 여기다 자기가 보는 것, 배우고 경험한 유·무형의 여러 가지 개별적 정신활동의 편린, 생명체로서 근본적인 욕구가 함께 엮이어 정신의 원천을 만들고, 이 정서적 이념적 가치의 틀이 만들어지고 나면 여기서 온갖 욕망의 형태와 감정의 기운이 자기도 어거하기 어려운 엄청난 힘으로 드세게 뻗쳐 나온다. 마치 태양을 향한 나무들의 처절한 생명력처럼 말이다.

이런 가치의 원천은 식물과 달리 옮겨질 수 있다는 데 우리의 희망이 있겠지만, 실제로 매 순간 주어지는 상황을 재해석해내거나 내가 의미 지어버린 가치를 바꾸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감정이 점지한 목표로 인해 갈구되는 그 욕망의 크기만큼 큰 고통이 엄습해 오고, 저항이 처절한 욕망일수록 고통도 크지만 우리는 힘이나 안목이나 의지가 약한 만큼 고스란히 그 고통을 받아야 한다.

가치관을 승화할 힘은 순전히 우리의 의식 전환에 있는데, 마치 동물이 자기 상황에 가장 적절한 생활터전을 찾듯이 인간은 정신의 먹이이자 생활공간인 가치와 의미의 터전을 새로 만들고 자유를 얻어야 한다.

독서의 힘을 입든, 아프고 많은 경험에 의하든, 깊은 영혼의 스승에 의하든 관계없지만 홀연히 새로운 의식이 일어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고 마치 태풍에 나무뿌리가 뽑히듯 큰 고통이 생길 수도 있고, 그 와중에서 시름시름 앓을 수도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처절한 구속을 벗어나려면 우리는 내가 뿌리박은 가치 세계가 보다 유연하도록 원천적인 자기 반조와 진리를 대조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신적 수행의 힘을 통하여 가능한 일일 것이다.

원불교 정관교당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