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벽을 보라 하면 보통은 그 깨끗한 벽에서 무엇을 찾는다. 만약 어떤 그림이나 무엇이 걸려 있다면 우린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본다. 그리고 관찰하고 느끼며 자기 나름대로 방식으로 느끼고 받아들인다.
만약 벽에 아무것도 없다면 점 하나하나 문양이라도 찾으려 할 것이다. 그것조차 없다면? 그래도 무엇인가를 찾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것은 우리가 무언가 느낄 것, 생각할 것, 의미 지을 것을 본능적으로 찾는 까닭이다.
왜 인간은 이렇게 무엇인가 의지할, 판단할, 사랑할 것을 찾으려 하는가? 원인은 자아의 취약성이다. 자아란 생각이나 감정이 자기를 대상으로 만들어낸 인식의 복합체인데, 이 자아에 따라 삶의 동력이 달라진다. 자아가 약하거나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 자존감의 부족분을 외부의 어떤 것이나 기타 등등 '유형의 무엇'을 통해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무언가에 의지하려는 욕구가 생기게 하고 부족한 것에 대한 갈망이 쉼 없이 솟아나게 한다.
그러면 우리의 그 갈망(또는 갈애·渴愛)의 대상은 또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것은 그야말로 전적으로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또는 환경에 따라 주어진 것을 비판적·무비판적으로 수용하든, 철저한 탐색과 궁구함이 없이 만들어지는 많은 욕구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사고에 따라 혹은 감정에 의해 색깔을 입고 그것이 이른바 '우리의 끊을 수 없는 기댐'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부모의 기질이나 특정한 문화집단의 영향을 받아 대체적인 사고와 감정의 틀이 정해지고, 그 조직이나 집단 속의 개인적 자리에 따라 독특한 개인적 경험이 다시 만들어지며, 개별적 체험이 중첩되면서 또 다른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구축한다.
이러한 이유로 저마다 가치관이나 감정체계나 세계관이 형성되는데 여기서 각자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특성이 생기고, 그것이 바로 우리 욕구체계를 구축한다. 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감정도 감각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완전한 형태를 이루는데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세계이며 세상이고 개인의 독특한 인생이다.
그러나 경험이 편협하거나, 이성과 감정이 보편성을 놓치면 왜곡이 일어난다. 우리는 구체적 현실로서 세상을 체험하지만, 사실은 그게 모두 자기만의 독특한 감각과 가치로 변환되어 수용되는 것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것이 스스로 자기 생각과 감정과 행동의 독특성과 울을 만든다. 이것이 상징적인 영역으로 비화하고, 감정과 도덕성이 추가되면 신을 만들어 내고 보살을 만들어 내며 사탄을 만들고 마구니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상과 감정과 가치체계를 계속 다듬고 보완하며 강화하는 가운데 후대로 유전하려 한다. 상상은 천상과 지옥을 만들어 내고 선인과 악인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은 저마다 나름의 도덕체계가 작동하여 만들어 내는 것들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스스로 또 집단에 속아 살아간다.
순수한 본래 자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있는 것'을 의식적으로 공상하고 만들어 놓고 감정이 거기로 쏟아져도, 이제는 이것이 내 마음이 기운 것인지 외부 상황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이른바 마음이 기울어진 결과이다. 이를 무명중생이라 한다.
원불교 정관교당 교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