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 사건은 리더의 자질을 돌아보게 한다. 사진은 조현아(왼쪽)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발렌베리 가문을 이끈 마르쿠스 발렌베리 시니어(1864~1943). 국제신문 DB·위키미디어

- 한국 대기업 닮은 발렌베리 가문
- 계열사 14개 자국총생산 30% 차지

- 150년간 경영권 세습했지만
- 자격 엄격하고 훈련과정 혹독해
- 자국민들 존경의 대상으로

- 이윤 85%는 공공사업에 투자
- 후계자 중 세계 1000대 부자 없어

- 자질보다 혈연 우선인 국내재벌
- 땅콩회항 같은 웃음거리 자초

"무릇 사람이 무거운 형벌을 받는 것은 이미 재화가 넉넉해진 뒤의 일이다. 비록 쓸 재물이 넉넉하고 두터운 사랑을 베풀더라도 형벌을 가볍게 하면 오히려 어지러워진다. 부잣집에서 사랑을 받은 자식은 재화를 넉넉하게 쓰고, 재화를 넉넉하게 쓰면 가볍게 함부로 쓰며, 가볍게 함부로 쓰면 사치가 심해진다. 지나치게 사랑하면 참을성이 없어지고, 참을성이 없어지면 교만하고 방자해진다. 사치가 심해지면 집안이 가난해지고, 교만하고 방자하면 난폭한 짓을 한다. 이는 비록 쓸 재물이 넉넉하고 사랑이 두텁더라도 형벌을 가벼이 한 데서 비롯된 우환이다." ― 한비자 '육반(六反)'

■후계자의 조건은 혈연인가

지난해 12월부터 대한항공은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다. 그리고 지난 5월 22일, 관심의 꼬투리가 된 '땅콩회항 사건'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또 전 세계인의 비웃음을 산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당시 이 판결에 대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니 '유전집유, 무전복역'(돈이 있으면 집행유예, 돈이 없으면 복역)이니 하면서 사법체계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불법이나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나 이 '땅콩회항 사건'의 주인공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한국 재벌가에서는 도대체 자식을 어떻게 교육시켰는지 의문이 든다(다들 짐작하고는 있겠지만).

'땅콩회항 사건'은 미국 현지시각으로 2014년 12월 5일, 뉴욕발 인천행 여객기를 탄 조현아 부사장이 일등 기내식 서비스로 제공되는 견과류를 승무원이 봉지 채로 가져왔다고 해서 이를 문제 삼으며 그 자리에서 막말을 하고 사무장을 질책하다가 이윽고 사무장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고함치며 램프리턴(출발을 앞둔 항공기가 다시 돌아와 승객을 내리게 하는 것으로 비상시에 기장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다)을 한 일이다. 비록 자신이 부사장이지만 이미 승객을 태우고 이륙을 앞둔 항공기에서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성내며 질책하고 또 안전과 원칙을 무시하고 램프리턴을 하게 한 일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큰 잘못이다. 더구나 나중에 거짓 주장을 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으니, 이 정도면 경영자로서 자질이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현아 부사장은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뒤에 곧바로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부에 입사했고, 10년도 채 되지 않아 전무를 거치고 부사장이 되었다. 다른 기업에서 근무한 적은 없고, 오로지 대한항공에서만 근무했다. 과연 자질과 능력이 충분해서 고속 승진했는가? 역시 자질과 능력이 의심스런 조현민도 29세에 임원이 된 것을 보면, 능력을 검증받은 것보다 조양호 회장의 딸이라는 혈연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대개의 재벌 총수들이 그렇듯 조양호 회장도 기업을 개인 소유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한데, 이것으로도 공개된 기업의 경영자로서는 결격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자식을 경영자가 될 만한 인물로 제대로 키우지도 못한 채 능력이 부족함에도 딸이라는 것 때문에 임원으로 두었다는 것도 경영자로서는 결격이다.

실제 조양호 회장은 땅콩회항 사건이 있은 뒤 곧바로 사태를 파악하여 잘잘못을 따지고 그 자신이 나서서 일을 처리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경영진이 객실 승무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조종사 노조의 반발을 산 뒤에야 사과문을 발표했을 뿐이다. 또 조양호 회장은 2015년 시무식에서 '경계 없는 소통'과 '기업문화 쇄신'이라는 혁신안을 발표했으나, 최근 조종사들의 불만과 이탈 등을 통해 허울뿐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애초 혁신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듯하다. 이는 퇴사를 앞둔 한 부기장이 사내 게시판에서 토로한 글에서 잘 드러난다.

"지금 회장님께 보고하는 사장님, 여러 본부장님, 상무님, 전무들은 회장님의 귀를 막고 있습니다. … 지금 회장님 곁에는 듣기 좋고, 달콤한 말만 하는 아첨꾼, 탐관오리 같은 이들만 남아 있습니다. … 대한항공에는 충신들이 없습니다. 이것은 회장님의 잘못입니다."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 선정

스웨덴에도 한국의 재벌 못지않은 거대한 가족 기업이 있다.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약 40%, 국내총생산의 약 30%를 차지하는 열네 개 대기업을 거느린 발렌베리 가문(Wallenberg Family)이다. 이 가문은 150년 넘게 5대에 걸쳐 경영권을 세습했는데, 언뜻 보면 한국의 재벌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사뭇 다르다. 그래서 한국의 재벌처럼 비난받거나 손가락질 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스웨덴 국민이 매우 존경한다.

발렌베리 가문도 경영권을 세습하지만, 거기에는 엄정한 원칙이 있다. 마르쿠스 발렌베리 시니어(Marcus Wallenberg Sr., 1864∼1943)는 "우리는 가족 기업이다. 가족 경영은 변함없이 지켜내야 한다. 단, 경영에 적합한 사람이 있는 경우에 한한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가 되려면 엄격한 과정을 거쳐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한다.

첫째,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해야 한다.

둘째,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

셋째, 부모 도움 없이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 실무 경험을 쌓고 국제 금융의 흐름을 익혀야 한다.

10년이 넘게 걸리는 이 과정을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비로소 후계자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이 원칙에 따라 후계자 두 명을 선정하는데, 그것은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라고 한다. 견제와 균형은 독단과 독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명멸해간 왕조들을 보라. 대부분 왕조는 창업한 때로부터 불과 100여 년도 지나지 않아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가령 수(隋) 왕조는 문제(文帝)가 400여 년의 혼란기를 종식하고 창업했음에도 곧바로 양제(煬帝)가 폭정으로 멸망시켰다. 이처럼 우둔한 군주나 포악한 군주가 나오면 반드시 전횡을 일삼기 마련이고 또 뛰어난 군주가 연이어 나오는 일이 참으로 드물기 때문에 황태자나 세자를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교육하며 제왕학을 가르쳤던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도 그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계자 선정 과정부터 엄격한 원칙을 세웠고, 마지막에 후계자를 선정할 때도 두 명으로 한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에는 후계자 선정에서만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으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또 다른 원칙이 있다. 비록 가족 기업이지만, 반드시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한다. 아마도 가족 기업의 특성상 경영자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기업의 생존 토대는 사회다"라는 모토에 입각해 이익의 85%를 사회에 환원하여 대학, 도서관, 박물관 건립 등 공공사업에 투자한다. 그런 까닭에 수많은 대기업을 거느리고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도 어떤 후계자도 세계 10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고작 몇 퍼센트 지분만으로 수십 개 대기업을 거느린 그룹의 경영자가 되어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는 한국 재벌 경영자들과는 판이하다.

■혈연에 미련을 두면 모두 죽는다

한비가 비록 '군주를 위한 통치론'을 펼쳤지만, 결코 군주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사로이 이익을 꾀하는 신하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에게 횡포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오늘날 한국 대기업이나 재벌 총수들도 이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해서 후계자 양성에서 종종 실패한 꼴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늦지 않다.

"예부터 '정치는 머리를 감는 것과 같아서 머리칼이 빠지더라도 반드시 감아야 한다'는 말이 전한다. 머리칼이 빠지는 것이 아까워서 고운 머리칼이 자라는 이익을 잊는 것은 저울질할 줄 모르는 것이다. 무릇 종기를 도려내면 아프고, 약을 먹으면 쓰다. 입에 쓰고 아프다고 해서 종기를 도려내지 않고 약을 먹지 않으면 몸을 되살리지 못하고 병도 고치지 못한다." ― '육반'

◇ 발렌베리 가문 이렇게 다르다

# 후계자 선정 원칙

-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해야 한다.
- 해군사관학교에서 강인한 정신력을 기른다.
- 스스로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 실무 경험.
- 후계자는 두 명을 뽑아 견제와 균형 도모.

# 경영 원칙

- 반드시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해 경영자 독단을 견제토록 한다 .
- 이익의 85%는 사회에 환원해 대학·도서관·박물관 건립 등 공공사업에 투자.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