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10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야제. 남포동 밤하늘을 불꽃이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국제신문DB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기자로서 취재하려면 프레스배지(Press Badge)를 신청해야 한다. BIFF가 언론인에게 발급하는 프레스배지를 받으면, 취재할 때 편의를 제공받는다. 신청 기간은 7월 31일~9월 15일. 웬만한 신청이라면 끝까지 미적거리다 마감이 다가와서야 서두르느라 난리를 피웠을 텐데, 올해 BIFF 프레스배지 신청은 지난주 일찌감치 끝냈다. 영화제에서 보내준 '귀하의 프레스배지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메일까지 진작 받았다.

뭐든 미리미리 하는 착한 어린이처럼 마감을 한 달 가까이 남겨두고도 이토록 착실·신속히 움직인 걸 보면, 20주년인 올해 BIFF 취재에 대한 기대감이 나도 몰래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던 모양이다.

꼽아보니, 그간 정식으로 BIFF 취재팀 일원이 되어 영화제 현장을 뛴 것은 9번이다. 지난 20년 역사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지금의 BIFF(비프)가 아닌 'PIFF(피프)'로 부르던 시절(1996~2010년)의 상당 기간은 영화제를 착착 반석에 올리던 시기였다.

그때 부산의 어르신들은 곧잘 피프를 '피파'라고 잘못 발음했던 게 기억난다. "피판가 머시긴가 한다꼬 사람이 어찌 많던지!" 하는 식이다.

어머니도 내게 "피파 취재한다고 고생한다"고 위로했다. 그때 입으로는 "어데예! 아닙니다. 어머니" 하면서도 속으로 '피파가 아니고 피픈데'라고 중얼거리며 기자의 교열 본능과 아들의 부모 공경 사이에서 갈등하곤 했다. 1990년대 말 구제금융사태 때 어르신을 취재하면,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발음이 어려워 "아엠에푸"라 하거나 심지어 "에푸"로 축약하고, "에푼가 머시긴가…"로 활용하던 분이 적잖았던 것과 비슷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그 시절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만큼 시민의 관심과 지지를 폭넓게 받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반석에 올랐다는 뜻이다. 인구 350만 대도시의 할아버지 할머니 경로당 대화에까지 '아엠에푸 극복'을 잇는 화제로 '영화제 성공 개최'가 떠올랐다면, 온 시민 사이에선 오죽했겠나. 그런 관심과 지지의 결과물이 영화제에 지원되는 시민의 세금이고, 지역사회의 협찬과 협력일 것이다.

얼마 전 BIFF가 '20주년 기념 특별전-아시아 영화 100'을 발표했다.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를 필두로 한 목록을 보면서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서 BIFF의 전문성과 신념을 실감했다. 영화에 집중(Focus on Film)하는 '영화의 축제'로 BIFF의 방향성과 정체성도 느꼈다.

어쨌거나 지난 10주년 때 그랬듯 20주년도 뜻깊고 큼직하게 기념하려면 그간 함께하고 고생한 시민을 위한 자리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흥겨운 기획은 없을까. 영화제가 성숙할수록 영화에 집중하는 영화의 축제가 돼야 한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올해는 20주년 아닌가. 막상 영화제가 시작하면 많은 시민은 괜히 설레면서도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 응원만 보내곤 했다. 그렇다 보니 막상 이 유명한 페스티벌을 맛볼 곳이 마땅치 않게 되기도 했다. 이 경우 시민에게 영화제란 '영화와 (그에 잇따라 펼치는) 축제'다.

BIFF가 사랑한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어느 멋진 일요일'에서 유명한 음악 없는 음악회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주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독특한 기획의 '철학, 영화 그리고 음악 이야기 콘서트'가 환호 속에 끝난 장면도 떠오른다.

돈이 없더라도('어느 멋진 일요일') 기획이 좋으면('음악 이야기 콘서트')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고 그 장면들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