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을 하는 헬기에서 삐라가 흩날리고 뿌려지는 최루액에 온몸이 벌집처럼 따갑게 짓무른다. 전기와 식수가 끊어지고 식량도 곧 바닥이다. 밖에선 연신 선전용 문구를 외쳐대며 항복을 종용하지만 둘러쳐진 바리케이드 너머의 세상이 그늘 한 뼘 없고 오물 냄새로 찌든 이곳보다 결코 나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목을 매고 누군가는 투신하고, 그렇게 죽음에 서서히 잠식돼 간다….

이창근의 해고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치 전쟁영화를 보는 듯하다. 적이 누군지 분명했던 1970·80년대 시대극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묘사된 장면은 2009년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책의 저자는 실제로 '바닥이 갈라지는 틈 사이로 사람이 빠지고 그 언저리에서 살려달라 아우성치는 영화 속 장면들이 이어졌다'고 진술하기도 한다.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처럼 생존권은커녕 인격이 살해당하는 현장, 세상의 끝이라 할 수도 있을 그 파국의 현장에서 이창근의 일기는 시작되고 있다.

'이창근의 해고일기'를 만난 건 지난달 또따또가 갤러리에서 열린 서평강좌 제1회 '데모:북 demo:book'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2009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쌍용자동차 노조의 투쟁을 담은 기록물이다. 크고 작은 여러 매체에 실렸던 87개의 글을 시간 순서로 배열했다.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객관적인 시선으로 노동 문제와 사회 전체를 연동 지어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의자는 말했지만, '해고'라는 표지 제목과 지난해 12월 노조 간부 해임처분이 정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 앞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었다. 그러나 책을 펼치는 순간 분노와 절망조차도 상쇄시켜버리는 무력감이 지배적인 정서일 것으로 생각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민주노총 부산지도위원인 김진숙에 의해 묘사된 저자 이창근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김진숙은 이창근을 전장의 종군기자로 묘사한다. 핏발이 곤두서고 불안과 짜증이 드러난 얼굴을 한 그는 26명이 죽어 나간 고통과 절망의 현실을 6년 동안 말하고, 또 말하고, 마침내 굴뚝에 올라가서까지 외쳤다. '함께 살자, 여기에 사람이 있다'라는 구호와 함께 절망을 말하고, 그리고 이창근은 매번 그것을 글로 써냈다. 책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재난의 유형을 추출할 수 있다고 했던 강의자의 말처럼 이창근의 기록은 쌍용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진 희망버스와 반값등록금 촛불집회부터 구미KEC 파업, 유성기업, 부평 대우자동차, 재능교육, 풍산, 밀양 송전탑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찰 만큼 많은 노동 현장을 걷고 또 걸으며 기록하고 있다.

여전히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노동의 현장들을 만나면서 이창근은 쌍용차 투쟁이 우리 모두의 '공통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에 힘을 얻었고 무수한 죽음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희망을 긷는 이유가 됐다는 사실이다. 2015년, 이창근의 말처럼 이제 싸움의 성격은 바뀌었다. 노조와 사측의 대결구도는 노동과 자본, 정권과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들과의 싸움에서 필요한 것은 '연대와 결속, 상호존중의 노력과 어려움을 살펴주는 마음'이라고 이창근은 말한다. 난공불락의 세력, 그 복잡다단한 싸움을 계속할 수 있기 위해 다시 한 번 '이창근의 해고일기'를 펼쳐 들어야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