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발표된 최양숙의 데뷔 음반.

- 60~70년대 최초 여성 샹송가수
- '황혼의 에레지'로 독보적 위치
- 브로드웨이서 음악 배운 이후
- 다양한 장르 대중가수로 거듭

한국에 외국 음악이 들어온 것은 구한말 개항기에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였다. 찬송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 민요들이 이때 소개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자신의 적성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의 음악을 금지하고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의 칸초네를 허용했다. 이때 탱고와 샹송도 들어왔다. 해방 이후에는 상해에서 돌아온 현인이 '파리의 아가씨'와 같은 샹송을 무대에서 불러 최신 외국노래를 부르는 가수라는 이미지를 얻었고 아예 '현인 샹송집'이라는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이제 막 미국의 대중음악이 소개될 무렵 미국 노래가 아닌 프랑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는 문화적 취향의 소유자임을 과시하는 일이었다.

이런 현상은 1950년대에도 계속돼 특히 지식인들이 고급문화 취향을 과시하기 위해 샹송을 선호했다. 1960년대에는 샹송을 자신의 주된 레퍼토리로 삼는 가수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가 바로 최양숙이다. 7080세대들은 최양숙 하면 가을에 불리는 명곡 '가을편지'를 떠오르지만 196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황혼의 에레지'라는 히트곡을 떠올릴 것이다.

1957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진학한 최양숙은 2학년 때부터 KBS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한국예술사절단의 일원으로 해외 공연을 떠났는데 해군 함정 안에서 여흥시간에 우연히 부르게 되었던 샹송 '고엽'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후 학생 신분으로 KBS 라디오 연속극 '어느 하늘 아래서'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던 최양숙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예고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자 그만둔다. 1962년 MBC라디오에 전속가수로 활약하며 에디뜨 피아프의 히트곡 '빠담 빠담' '사랑의 찬가'등의 샹송을 부르곤 했다.

1963년 9월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최양숙. 김형찬 제공

1964년 드디어 첫 음반을 취입하며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나서는데 박춘석의 곡 '황혼의 에레지'를 타이틀로 한 이 음반에는 프랑스 샹송의 명곡 '파리의 다리밑', 샹송가수 샤를르 트레네의 히트곡 '라메르', 에디뜨 피아프의 히트곡 '사랑의 찬가'가 수록됐다.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성량을 감미로운 음률에 실어 뭇사람의 가슴속에 사랑과 낭만을 불러일으켜 주는 샹송가수 최양숙 양. 최 양은 오늘날 '한국의 이벳트 지로'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샹송이다" 이 말은 한국의 팬들이 처음으로 최 양의 노래를 듣고 아낌없이 연발한 찬사이다. 최양이 표면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실에 있어 우리나라에는 샹송곡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가수가 없었다는 것이 일반 팬들의 불만이었다. --'한국의 이벳트 지로 최양숙 양' 동화그라프 1963년 9월, 55쪽

위의 글에서 보듯이 최양숙은 샹송가수 이미지로 출발했다. 하지만 최양숙은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탓인지 가수 활동에 무척 소극적이었다. 방송에서만 활동하고 일반 무대에는 좀처럼 서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에게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1967년 6월 캐나다 몬트리올 박람회의 민속예술단원으로 참가했던 그녀는 그 후 뉴욕에 건너가 1년 가까이 머물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선생에게 여러 가지 음악을 배웠다. 이곳에서 최양숙은 대중음악가수가 무엇인지를 경험했다. 1950년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패티 페이지가 40세의 나이로 재기 공연을 하는 모습에 많은 팬이 박수를 보내는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의 음악 활동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후 파리, 마닐라, 홍콩, 일본 등지를 순회하며 활동을 하다가 1968년 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샹송 일변도에서 탈피해 가요는 물론 팝송까지 부를 수 있는 대중가수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런 모습이 음반으로 드러난 것이 1971년 발표한 '꽃피우는 아이'이다.

최양숙의 오빠 최경식은 당시 CBS 라디오의 PD로 근무했는데 최경식이 알고 있었던 김민기를 소개받으면서 그의 곡인 '꽃피우는 아이'와 '가을편지'를 수록한 음반을 발매하게 되었다. 이 음반에서 '가을편지'가 히트하면서 최양숙은 샹송가수를 탈피하고 통기타 음악 분야에서도 명곡을 남긴 가수가 되었다.

이후 샹송가수의 계보는 1970년대 중반 패션모델로 활동하던 루비나가 가수로 방향을 전환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1980년대에는 '당신은 안개였나'로 유명한 이미배가 그 계보를 이었다.

대중음악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