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에서 풍어면 서해는 흉어…뒤바뀌는 주기는 대략 40년
- 고동어 고망어 돔발 고도어…오랜 역사 만큼 이름도 많아

- 2011년부터 부산시어로 지정, 지역민에 더 애틋한 생선
- 미세먼지 나온다 타박 마오…구이말고 찜·조림도 있으니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나는 또다시 바다를 가르네

몇 만 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

-가수 루시드 폴의 '고등어' 중에서-


어린 시절 가수 김창완이 부른 '어머니와 고등어'란 제목의 노래를 즐겨 불렀던 적이 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란 지극히 평범한 가사의 이 노래는 대표적 서민 생선 고등어를 소재로 삶에 고단한 어머니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어 꽤나 인상적이었다.

김창완과 루시드 폴의 노래에서도 표현됐듯이 고등어는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그리고 어머니의 애정과 정성을 가득 품은 물고기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고등어에 '국민생선'이란 애칭을 붙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국민생선 고등어가 요즘 수난을 당하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환경부 발표에서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일 SNS가 뜨겁게 달궈졌고 금어기를 마치고 막 조업에 들어간 수산업체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그런 만큼 언론의 관심도 지대했다. 고등어가 과연 주범인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대중의 이목을 이만큼 집중시킨 것만 보아도 고등어가 온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국민생선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아직도 어머니가 하얀 쌀밥에 올려주시던 석쇠에 구운 고등어 맛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 맛을 볼 수 없는 걸까? 한 TV 뉴스 앵커의 멘트처럼 고등어의 '죄'가 단지 값싸고 맛있는 것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등이 둥글게 올라 고등어라네

	한국인이 사랑하는 고등어 구이.

고등어(高登魚)는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 일설에 따르면 등이 둥글게 올라 있는 모양을 빗대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다른 물고기들이 그렇듯이 고등어의 이름도 다양하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옛 칼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 고도어(古刀魚)라고 기록했으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같은 이름이 여럿 보인다.

1469년(예종 1)에 편찬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는 고도어(古都魚)라고 기록했으며,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푸른 무늬가 있는 물고기라고 해 벽문어(碧紋魚)로 적었다. 또 이만영(李晩永)은 1798년(정조 22)에 펴낸 '재물보(才物譜)'에서 고도어(古道魚)로 기록했다.

고등어는 고동어, 고망어, 돔발이라는 방언을 갖고 있는데, '자산어보'에 따르면 돔발이(塗音發)는 작은 고등어로서 "머리가 약간 쭈그러들어 모양이 조금 높은 편이며, 빛깔은 조금 연한 편이다"고 했다. 이외 고등어는 지역에 따라 크기를 기준으로 고도리, 열소고도리, 소고도리, 통고도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동해에서 풍어면 서해는 흉어라오

	경북 향토음식 고등어찜. 국제신문 DB

고등어는 길이가 약 30~50㎝ 정도이며, 방추형으로 약간 옆으로 납작하다. 몸빛은 등은 녹색이고 배는 은백색이다. 몸에는 흑색의 물결무늬가 등으로부터 옆줄 밑까지 분포하고 있다. 정약전도 이런 고등어의 특징을 비교적 잘 살펴 "길이 두 자 정도로 몸이 둥글고 비늘이 매우 잘며, 등이 푸르고 무늬가 있다"고 '자산어보'에 기록해 두었다.

고등어는 우리나라 삼면 바다에서 모두 분포하는데, 2∼3월경에 제주 성산포 근해에 몰려와 차차 북으로 올라간다. 이 중 한 무리는 동해로, 다른 무리는 서해로 각각 올라가며 9월∼다음해 1월께 남으로 내려온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동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많으면 서해로 올라가는 무리는 뜸하고, 반대로 동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뜸하면 서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등어는 동해에서 풍어이면 서해는 흉어가 된다고 하며, 그 주기는 대체로 40년가량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정을 정약전도 '자산어보'에 자세히 기록했다.



"추자도 여러 섬에서는 5월에 낚시에 걸리기 시작하여 7월에 자취를 감추며, 8~9월에 다시 나타난다. 흑산 바다에서는 6월에 낚시에 걸리기 시작하여 9월에 자취를 감춘다. (중략) 섬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고등어는) 건륭경오(乾隆庚午, 1750년)에 번성하기 시작하여 가경을축(嘉慶乙丑, 1805년)에는 풍작이 흉작으로 변하여 버렸는데, 그렇다고 해서 잡히지 않는 해는 없었다고 한다. 병인(丙寅, 1806년) 이후에는 해마다 줄어들어 근래에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요즈음 영남 지방의 바다에서 새로이 이 물고기가 나타났다고 들었다. 그 이치를 알 수가 없다."



제주에서 북상하기 시작한 고등어가 5월에 추자도를 지나 6월에는 흑산도에 다다르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또 흑산도에선 고등어가 1750년에는 풍어였으나 50여 년이 지나 흉어기로 돌아섰으며, 이 무렵 영남지방에서 많이 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정약전도 그랬지만 아직도 고등어가 동해와 서해를 번갈아 오가며 출몰하는 까닭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성질이 변덕스러워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빼어난 맛을 골고루 뽐내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가 알 수 없는 마음 중엔 고등어의 마음도 있는 것 같다.

■고등어, 다양하게 즐기기

	고등어 조림.

고등어가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이라면 구이 말고 다양한 방법으로 고등어를 즐겨보자. 구이와 함께 대표적인 조리법으로 알려진 조림도 있지만 이참에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단조로운 고등어 조리법을 다채롭게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구이나 조림 이외의 조리법으로도 고등어 맛을 즐겼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잡히는 즉시 죽고, 신선도가 떨어지면 살에 많이 함유된 히스티딘이라는 아미노산이 히스타민으로 변해 식중독을 일으키기 쉽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요즘처럼 냉동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잡은 고등어를 말리거나 염장(鹽藏)했다.

세종(世宗) 때 고등어 산지로 유명했던 함길도(咸吉道)에선 고등어를 말린 건고도어(乾古道魚)를 공물(貢物)로 진상했다. 요즘은 건고등어를 좀처럼 보기 어렵지만 경북지역 향토음식의 하나로 건고등어찜이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양념장에 재운 뒤 쪄서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북지역에서는 말린 것뿐만 아니라 염장한 고등어로도 찜을 만들어 먹었다. 이 지역 향토음식인 자반고등어찜이 바로 그것인데, 자반고등어를 쌀뜨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 뒤 실고추, 풋고추 등을 고명으로 올려 쪄낸다고 한다.

고등어를 말리기 위해 배를 갈라 꺼낸 내장과 알은 젓을 담았다. 조선의 미식가 허균(許筠, 1569~1618))이 1611년(광해군 3)에 펴낸 조선 팔도의 토산품과 별미 음식을 소개한 책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고등어는 동해에 있는데 그 창자젓이 가장 좋다"고 적혀 있다. 또 1776년(영조 52)에 발행한 '공선정례(貢膳定例)'에도 고도어장장해(古刀魚腸臟醢)가 기록되어 있다.

경북과 부산의 향토음식 중에는 고등어추어탕도 있다.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를 삶아 살만 발라낸 뒤 우거지와 함께 끓인 것인데, 이 또한 구이를 대신해 고등어 맛을 즐길 수 있는 대안 조리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고등어를 구울 때 미세먼지가 발생한다고 해서 고등어 맛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선조들의 지혜를 살려 다양하게 그 맛을 즐겨보는 것도 우리의 입을 행복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부산의 상징 물고기 , 고등어

부산은 우리나라 고등어 생산·판매·유통의 중심지다. 몇 년 전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 고등어 판매량 중 약 84%가 부산공동어시장을 통해서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부산의 고등어는 그야말로 전 국민의 밥상에 올랐던 셈이다.

부산시는 지난 2011년 7월 고등어를 시어(市魚)로 지정했다. 힘찬 기운으로 바다를 누비면서 우리나라를 살찌우는 고등어가 바다로 국익을 선도하는 해양수도 부산을 잘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부산의 상징 고등어가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고등어를 위해 시민들이 슬기롭게 지혜를 모을 때다. 힘내라 고등어!!! 힘내라 부산!!!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