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란 위해 6~8월이면 가덕도·다대포 앞바다 쪽 서낙동강 하류로 올라와
- 야행성인 탓 밤에만 어획…고기잡이 불빛 漁火 진풍경

- 삼삼하고 담백한 매운탕, 짭조름하고 구수한 구이는 찬물에 만 밥 한 술이면 끝
- 수조기향 밴 시원한 무…찜은 식어도 비린내 없어

- 달고 쫀득한 살 일품인 회는 장맛비에 뻘내 배어 맛 못 봐

예부터 우리 민족이 귀하게 여기고 즐겨 찾던 국가대표 생선을 꼽으라면 단연 '조기'일 것이다. 여름철 '기력을 돕는다' 하여 '조기(助氣)'라고도 부르는 고급 어종으로, 임금의 수랏상 정중앙을 차지할 정도로 사랑받았던 '인기 진상품'이기도 했다. 특히 우리네 밥상 중 최고의 반열인 '굴비밥상'의 굴비는 바다의 충만함을 잔뜩 머금었기에, 여름철 입맛 없을 때 두고두고 꺼내먹는 귀한 음식으로 존중받았다. 살이 연하고 맛이 좋아 구워 먹고, 지져 먹고, 찜 해먹고… 탕으로, 젓갈로, 회로, 다양하게 사랑받아 온 어종이다.

	서낙동강 수조기로 차린 밥상.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조기 찜,수조기 구이, 수조기 매운탕. 최원준 사진제공

조기는 농어목 민어과의 어종으로 참조기, 수조기, 보구치(백조기) 등이 있다. 참조기는 서해 칠산 앞바다와 연평도 부근에서 주로 잡히고, 수조기는 부산, 목포, 인천 등 서남해 지역에서, 보구치는 남해에서 주로 잡힌다.

이렇게 귀하고 사랑받는 조기류가 부산에서도 잡힌다고 하면 의아해할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그것도 부산 먼바다가 아닌 서낙동강 하구 인근 유역에서 떼를 지어 서식하고, 어획량 또한 쏠쏠하다면 말이다.

■하구언 들어선 뒤 잡히기 시작

수조기가 낙동강으로 오르는 이유는 산란을 위해서다. 해마다 6~8월이면 산란을 위해 낙동강 하구로 올라오는데, 보통 가덕도 동쪽 해역과 진우도 인근, 다대포 앞바다 등 서낙동강 하류 유역이다.

수조기는 참조기처럼 몸이 연한 회갈색이고 배는 노란색을 띤다. 그러나 몸 전체에 흑갈색 점이 퍼져 있어 여느 조기와는 구별이 용이하다. 일명 반어(斑魚)라 부르기도 하는데, 몸 전체에 퍼져있는 얼룩점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듯하다.

수심 20~80m의 갯벌이나 모래 지역 바닥에 떼를 지어 서식하는데, 3년이면 30㎝ 안팎 크기로 자라고 최대 50㎝까지 성장하는 중형 어종이다. 부서, 부세조기, 민어조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조기는 조기류 중에서도 그 크기가 크고 맛도 좋아 인기가 높다. 40~50cm 정도의 큰놈들은 한 상자당 20~30여만 원을 호가하며 제사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때문에 이맘때 즈음이면 소형 어선이나 낚시 어선들이 서낙동강 하구에 집중적으로 모여들어 수조기를 잡는데 열을 올린다.

수조기는 처음에 서낙동강 서쪽 진우도 부근으로 들어왔다가 장마 이후에 동쪽 다대포 쪽으로 이동하는데, 진우도 인근이나 서낙동강 하류 쪽은 그물 칠 장소가 협소해 낚시로 잡고 다대포 앞 해상서는 그물을 설치해서 잡는다.

수조기는 야행성 어족으로 밤에만 어획이 가능하기에, 서낙동강 하류에는 고기잡이배들이 밤을 새워 불을 밝히고 수조기를 잡는다. 때문에 서낙동강 유역 해상에는 아닌 밤중에 어화(漁火), 고기잡이 불빛들이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수조기가 낙동강 주변으로 회유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 한다. 명지 사람 정동일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수조구(수조기)가 서낙동강에 보이기 시작한 거는 강을 막고 난 뒤부터입미더. 우리 어릴 때는 숭어, 전어, 꼬시래기를 잡았지, 수조구는 없었어예. 하구언이 들어서고 난 뒤 물길이 바뀌어서 그런지 수조구가 잡히기 시작하데예."

가끔씩 수조기 잡이에 따라나선다는 정 씨의 체험담을 조금 더 들어보자. "한 틀에 45m짜리 조기그물 네 틀을 이어서 그물을 치는데, 초저녁 해가 있을 때 쳐서 1~2시간마다 그물을 들어 올려 수조구를 잡습미더. 그렇게 새벽까지 10번 정도 그물을 올리는데, 물때가 좋을 때는 조과가 괜찮습미더." 특히 수조기가 유난히 많이 우는 날이면 조과가 더 좋다고.

■'뽁뽁' 수조기 우는 소리

	서낙동강에서 잡은 수조기.

초여름 수조기가 서낙동강으로 올라오면 밤마다 '뽁뽁' 수조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민어와 보구치처럼 몸속 공기주머니인 '부레'로 개구리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등을 내는 것인데 산란을 위해 짝을 찾는 소리라고들 한다.

지인의 식당에서 수조기로 밥상을 받는다. 전날 잡아서 싱싱한 수조기로 구이와 조림, 매운탕 등을 상에 올렸다. 우선 팔팔 끓는 '수조기매운탕'을 맛본다. 국물이 들큰하다. 살이 달아서 감칠맛도 좋다. 매운 고춧가루 때문인지 칼칼하기도 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하게 씹히는 살의 식감도 괜찮다.

소주 한 잔에 매운탕 한 숟갈 뜨니 진하고 얼큰한 것이 술안주로 그저 그만이다. 두어 숟갈 뜨니 점점 시원해지며 속이 환해진다. 가끔씩 방아 향이 살짝 풍기며 입맛을 자극한다. 국물이 졸아들 때쯤 육수를 넉넉하게 부어 다시 끓이니, 이 또한 삼삼하고 담백해서 좋다. 해장하듯이 계속해서 떠먹게 된다.

'수조기구이'는 노릇노릇하게 구워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껍질과 함께 한 젓가락 집어보니 껍질은 바삭하면서도 고소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담담하다. 이 두 가지 맛깔이 어우러지며 생선구이의 조화로움이 흔쾌하다.

소금간이 짭조름하여 밥과 함께하니 굴비 맛도 난다. 짭짤하면서도 끝 간 데 없는 구수함 또한 일품이다. 여름철 밥맛 없을 때 소금 간 한 수조기구이에, 밥 한술 찬물에 푹푹 말아 먹어도 제맛이겠다.

'수조기찜'은 냄비에 무를 깔고 그 위에 수조기를 올린 다음, 진간장과 고추장,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양념과 함께 센 불에 한소끔 끓인 후, 다시 은근한 불에 조려낸다. 한입 꼬집으니 진한 양념에 생선조림의 강렬한 입맛이 입안을 돈다.

방아와 곁들여 입에 넣으니 풍부한 방아 향이 상큼하게 입을 가셔준다. 무를 한 조각 베어 무니 무의 시원함과 수조기 국물이 진하게 배어있다. 밥과 함께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가 없을 정도다. 조림 한 점 함께하니 짭조름함과 고소한 맛, 향긋한 맛이 진한 국물과 담백한 밥알 등과 어울리며 알콩달콩해진다. 식어도 비린내가 없어 술안주로도 그저 그만이다.

■서낙동강 권역의 계절 음식

잡는 즉시 생선회로도 먹기 좋은데, 살이 부드럽고 달아 남녀노소 모두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초장이나 고추냉이, 된장 등 다양한 소스로 즐길 수도 있어 부담 없는 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마철 이후라 달고 쫀득한 '수조기회'는 아쉽게도 맛을 볼 수 없었다.

"요즘 시우(時雨 장맛비)가 내리가꼬 조구(조기)살에 뻘내가 납니더. 그래서 시우 내릴 때는 회는 잘 안먹지예."

산란철이면 서낙동강을 중심으로 부산으로 돌아오는 수조기. 밤마다 제 짝을 찾는 수조기들의 울음소리로 서낙동강은 밤을 맞이하고 새벽을 깨운다. 살이 부드럽고 담백하여 낙동강 유역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생선. 귀하디귀한 조기 대신 제상에도 놓였고, 갯가 사람들의 제철 음식으로 환대를 받았던 착한 생선. 요즘은 그 개체 수가 예전만 못하다니, 수조기를 먹는 내내 괜히 마음 한쪽이 무겁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