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장하면 갈치 떠올릴 정도로
- 한때 전국 최대 산지로 명성
- 갈치회 석박지 등 음식도 유명
- 청·일 어선도 원정와 잡을 만큼
- 한반도 둘러싼 바다에 차고 넘쳐
- 남획에 따른 어족자원 고갈로
- 1980년대 이후 '귀한 생선'돼

예사 검법이 아니다

바다 속/물 흐르듯 휘두르는 /저 날렵한 몸놀림

은빛을 번쩍이며/날아다니는

눈부신 보검 - 홍일표 詩 '갈치' 중



옷 위에 서리 오되 추운 줄을 모르겠도다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낚싯배가 좁다 하나 속세와 어떠한가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내일도 이리 하고 모레도 이리 하자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중 추사(秋詞)에서-

기장(機張)하면 미역과 멸치로 그 명성이 자자하지만 과거에는 갈치로도 꽤나 유명했다. 갈치가 많이 나기도 했지만 그 맛도 출중해 많은 이들이 전국 최고의 갈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던 기장에서 지금은 갈치 구경하기가 어렵다. 갈치 낚시를 위해 기장을 찾는 낚시꾼들도 간간이 갈치 새끼인 풀치만을 낚아 발길을 돌린다고 전한다.

갈치는 값이 싸면서도 그 맛이 뛰어나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국민 생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획량이 워낙 적은 탓에 높은 몸값을 받는 귀한 생선이 되어 버렸다. 하루빨리 다시 돌아와 고운 은빛 자태를 뽐내며 서민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주기를 바라며 한때 기장 앞바다를 날쌔게 누비던 갈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칼을 닮아서 갈치라네

갈치구이

갈치는 지역에 따라 갈치, 깔치, 칼치라고 부른다. 전남 승주와 여천, 경남 거창·고성·남해·통영 등 일부 지역에서는 깔치로, 경기 북부·충북 중서부·경남 동부·경북과 강원도 대부분 지역에서는 칼치로, 그리고 이들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갈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갈치가 납작하고 긴 칼의 모양을 닮아서인데,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신라시대(新羅時代)에는 칼을 '갈'로 불렀다고 한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갈치를 군대어(裙帶魚)로 표기하고 '모양은 긴 칼과 같고, 큰 놈은 8∼9자, 이빨은 단단하고 빽빽하다. 맛은 달고 물리면 독이 있다. 이른바 공치의 종류이나 몸이 약간 납작하다'고 생김새와 특성을 설명했다. 서유구(1764∼1845)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갈치를 갈어(葛魚)로 썼으며, 조선 시대 편찬된 여러 지역 읍지들의 토산조에서는 도어(刀魚)로 쓰인 예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인도어(鱗刀魚)로, 일본에서는 대도어(大刀魚)라고 쓴다. 경남 통영에서는 '빈쟁이'라는 방언으로 부르기도 하며, 전라도에서는 갈치 새끼를 '풀치'라고 부르는데, 그 맛이 대단히 좋다고 한다. 이밖에 북한지역에서는 분장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기장의 명물

갈치조림

갈치가 지역에 따라 갈치, 깔치, 칼치라고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갈치는 우리 바다 전역에서 잡힌 어종이었다. 하지만 기장은 그중에서도 산지로 매우 유명했던 곳이다. 조선 시대 기장의 진상품에 갈치가 포함되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1892년 일본에서 기장으로 이주해온 일본 어민들도 멸치와 함께 갈치를 주요 어획 어종으로 삼고 있었다. 일본의 어민들도 1910년대 이전까지 매년 도래해 기장 연해에서 갈치를 많이 잡아갔다. 그만큼 기장 바다에는 갈치가 흔했다.

1930년대 간행된 신문에서도 기장이 갈치의 주요 산지로 소개되고 있었다. 1939년 6월 14일 자 '동아일보'는 '고대 현대를 통하여 갈치의 산지로 유명한 곳의 하나는 경남 기장 연해이다. 기장은 경주에서 그다지 멀지 아니한 지방이라 신라 통일 시에 기장산(機張産) 갈치가 국도(國都) 경주에 다수 이입되야 주요 식료품이 되었었던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는 내용의 칼럼을 내보내기도 했다.

갈치가 많이 나던 곳이니만큼 기장에선 갈치 음식도 특별하다. 구이, 조림, 젓갈 외에 갈치회나 석박지와 같은 음식이 있는 것이다. 갈치는 잡는 즉시 죽기 때문에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산지가 아니면 회로 맛보기 어렵다. 기장에서는 포를 떠낸 갈치살과 미나리·쑥갓·풋고추·양파 등 채소를 초고추장에 버무려 갈치회를 만든다. 갈치살을 초고추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 제주도 방식과 차이가 있어서 제주갈치회와 구분해 기장갈치회라 부른다. 석박지는 가을철에 잡힌 어린 갈치를 넣어 만든 무김치이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어린 갈치를 김치를 담는 데 사용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가을철이면 가정에서 즐겨 담가 먹던 김치의 하나였다고 한다.

갈치 산지로서 기장이 누린 유명세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남획에 따른 어족 자원의 고갈로 기장 갈치의 명성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1982년 10월 7일 자 '매일경제'는 '바다의 명산물이 사라진다'는 제명의 기사를 통해 연평도 조기, 영광 굴비, 동해 명태, 울릉도 오징어, 영덕 게와 함께 기장 갈치가 유명세를 앞지르는 수요를 감당하느라 남획한 끝에 생산량이 매년 감소해 수산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신문 보도의 우려처럼 기장 갈치라는 바다의 명물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대책을 마련해 기장 갈치의 명성을 되찾고 대변항이 갈치의 반짝이는 은빛으로 가득 차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국민 생선

갈치는 맛이 좋아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좋아한 생선이었지만 서민에게는 값이 헐해 더욱 친근했다. 그리하여 갈치는 고등어와 함께 당당히 '국민생선'의 반열에 오를 정도였다. 남획으로 귀해져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요즘은 그렇지 못하지만.

갈치가 국민 생선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풍부한 생산량 때문이었다. 예전에 갈치는 일 년 열두 달 내내 어획했으며, 1930년대 후반 당시 어획량 8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이 잡힌 어족이었다. 갈치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우리 바다에서 더욱 많이 나서 1910년대 이전에는 청나라 어선들까지 우리 바다에 진출해 갈치를 잡아갔다고 한다.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에 따르면 당시 청나라 어선들은 대단히 조직적이고 규모도 커서 일본 어민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어획량이 풍부하다 보니 자연 가격은 헐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격이 헐하다고 맛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부드럽고 고소한 갈치의 살은 많은 이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갈치는 맛있어서 좋고 가격이 헐해 더 좋은 생선이었던 것이다. "잔 갈치 사 먹어라" "값싸고 맛 좋은 갈치자반" "값싼 갈치자반 맛만 좋다"는 이야기들이 생긴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과거 이맘때가 되면 기장은 살이 통통히 오른 가을 갈치로 넘쳤다고 한다. 여름 산란기를 마치고 먹이를 충분히 먹어 살을 찌운 가을철 기장 갈치의 맛은 '미미(美味)'하다고 표현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우리 뇌리에서 기장 갈치의 존재가 잊힌 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기장 하면 멸치와 미역만을 떠올릴 뿐 갈치를 생각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기장은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갈치로 더 유명세를 탔던 곳이다. 굴비 하면 영광이듯이 갈치 하면 기장이었다. 당분간 기장의 가을 갈치 맛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