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말을 어른들께 많이 들었다. 세대별로 유행하는 노래가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노래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노래와 음악이 없는 밋밋한 영상을 무슨 재미로 볼 것이며, 감정을 기대볼 것인가. 노래가 없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지루할까. 인생의 희로애락도, 사는 이야기도 모두 노래에 담겨있다.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어도 노랫말에는 거짓이 없다'는 말은 노래가 사람의 마음에 직접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이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달래주던 노래, 쓰라린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콕 짚어주는 노래…. 그 노래를 불러주던 가수들은 얼마나 빛났던가.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가 쓴 가수를 말하다에는 '영혼으로 노래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가수 41'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세대를 넘어서도 심금을 울리는 노래, 한국가요사에 전설로 남은 가수들 41명에 대한 책이다. 1960년대 미8군 무대와 번안가요에서부터, 1970년대 대마초 파동, 1980년대 팝을 이겨낸 한국 가요, 1990년대 우리 음악의 혁명과 현재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책이라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의 소제목들을 보면 한 가수의 특징과 그가 불렀던 노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청년 스피릿 산울림' '트로트의 힘 심수봉' '바람처럼 떠난 사랑의 가객 김현식' '진실한 독백 김광석' '팝을 이긴 발라드 이문세' '인텔리겐차 양아치 신해철' 등. 떠오르는 노래들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저자의 어머니는 이미자를 좋아했다. 저자가 1970년대 중반, 젊은 포크 가수들의 노래에 취해 있을 때 이미자의 트로트를 좋아하는 어머니와 약간의 세대 갈등도 겪었단다. "이미자 노래가 뭐가 좋아요?"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듣는 노래는 싱거워서 못 들어! 구성지고 한스러운 노래가 진짜 노래지. 이미자가 있어서 다행이야. '여자의 일생' 같은 노래 듣고 참으면서 네 아버지랑 사는 거다. 그마저 없었으면 집을 나가도 수백 번 나갔을 거다!" 가수 이미자는 얼마나 많은 가정의 평화를 지켰을까. 나 역시 이미자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어머니를 떠올려본다.

이 책을 보고 있자니 문득 몇 년 전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부산의 소설가들이 모이는 자리 말석에 끼어 노래방에 갔다. 누가, 왜 제안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그날의 노래 주제는 '조용필 부르기'였다. 사회자도 정했고, 규칙도 정했다. '같은 노래 부르기 없기, 1절만 부르기'. 무척 조직적(?)이었던 그날의 거사는 조용필의 노래만으로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연령대가 다양했는지라 '조용필 노래 릴레이' 역시 다양했다. 전주만 흘러나와도 무슨 노래인지 훤히 떠올라 놀라고, 이토록 많은 히트곡을 이 한 사람의 가수가 불렀구나 감탄도 해가면서.

임진모 씨는 '자기 혁신으로 등극한 가왕 조용필'이라고 썼다.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만 그 물결을 헤쳐나갔던 것이 아니라, 노래가 함께 우리 곁에 흘러갔음을. 책을 읽는 내내 시대와 함께했던 노래를 마음껏 들었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