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숙도 등 천혜의 자연환경
- 컨템포러리 아트 중심으로
- 융·복합 콘텐츠까지 담을 예정

- 서부산권 젊은층·학부모 겨냥
- 능동적 '커뮤니티 미술관' 지향
- 전시·교육프로그램 예산 더 필요
- 미술계 전시공간 활용 협력도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들어서는 부산현대미술관이 특징 없는 외관, 불편한 접근성 등 불리한 외부 조건을 갖고 있더라도 이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국내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시도한 '두 번째 공립미술관'이라는 상징성과 을숙도라는 천혜의 자연환경, 서부산 개발권의 가운데 있다는 지리적 장점을 살려 시민이 찾아오는 미술관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출발은 좋지 않았지만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다. 내년 3월 개관까지 14개월이 남았다. 어떤 전문가를 뽑아 어떤 콘텐츠를 갖출지 부산의 문화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의 어린이미술관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미술 체험을 하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도 이런 어린이 미술공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성대 산학협력단 문화발전연구소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실시한 '부산현대미술관 개관준비 및 관리운영 종합계획 연구용역'에 따르면 부산현대미술관은 기존 부산시립미술관과는 다른 지향점을 갖는다. 기존 시립미술관은 부산의 근현대 작가와 신진을 발굴·연구하고, 작품을 보여주는 역할을 중점적으로 수행했다. 현대미술관은 시립미술관과 달리 '동시대 미술' '오늘날의 미술'을 뜻하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중점으로 다룬다. 순수미술을 비롯해 영상 디자인 공예 건축 패션 뉴미디어아트 설치 등 융·복합한 콘텐츠도 담는다.

현대미술관은 현재 에코델타시티, 명지신도시, 사상스마트시티 등이 조성 중인 서부산권으로 몰릴 젊은 층과 학부모층을 겨냥해 지역 주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협력하는 '커뮤니티 미술관'을 지향한다. 전시 연계 교육, 동아리 프로그램 등을 활발히 운영할 계획이다. 국내외 연구소와 다른 미술관, 연구센터, 대학, 교육청 등과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해 융·복합 문화예술교육의 거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미술관은 소장품 매입·전시 비중이 시립미술관보다 낮고 소장품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기획전의 비중이 크다.

문제는 이 같은 현대미술관의 지향을 실현하려면 시립미술관보다 많은 운영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술' 영역에는 영상·설치작품 비중이 크다. 영상 작품은 최신 장비와 이를 다룰 전문가, 방음시설 등이 필요하다. 회화 작품을 걸 때와는 차원이 다른 비용이 든다. 기획전, 교육 프로그램에도 비용이 필요하다. 기획전 사이사이에 자체 소장품전을 열어 한숨을 돌리는 시립미술관과는 경우가 다르다.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터빈홀에서 관람객들이 편안히 누워 설치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미술관의 올해 예산(19억8000만 원)은 시립미술관의(90억 원)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용역팀은 개관 후 5년간 한 해 16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시 문화예술과가 48억 원을 요청했는데 예산부서는 22억5000만 원으로 깎았고, 시의회에서 19억8000만 원으로 깎았다. 아직 문도 열지 않았는데, 시립미술관보다 규모도 작은데, 왜 그렇게 많은 예산이 필요하냐는 이유에서였다. '오늘날의 미술' '참여형 프로그램' 중심의 현대미술관에 대한 몰이해가 가져온 결과다.

현대미술관 활성화에는 부산 미술계 협력도 중요하다. 현대미술관은 유동 인구가 적고,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현재로써는 지역 미술계의 외면을 받고 있다. 현대미술관은 비엔날레 전용관을 짓는다는 계획에서 출발한 이후, 2년에 한 번 열리는 비엔날레와 제2시립미술관 역할을 함께하는 복합공간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런데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회는 최근 현대미술관에서 비엔날레 행사를 치르지 않겠다(본지 지난달 21일 자 2면 보도)고 밝혔다. 임원회나 총회를 거치지 않은 집행위원장의 의견이지만, 비엔날레를 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해 얻는 시너지를 포기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옥영식 미술평론가는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 미술관도 보러 가지 않는가. 이제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컨템포러리 미술을 다루는 만큼 시야가 넓고, 국제 네트워크가 있는 관장을 선임해야 한다. 나눠먹기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현대미술관 용역을 총괄한 김지호 책임연구원은 "을숙도와 낙동강이라는 자연환경을 백분 활용해 시민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도면보다 카페,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을 늘리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식 미술체험학습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