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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나와 같은 슬픔 가진 또 다른 '나'를 위해 /박진명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이면우 지음 /창작과 비평사 /8000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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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1-13 19:08:18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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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옥상에 쌓인 담배꽁초 보고
-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뇌하는 타인 발견
- 사내가 뛰어내리지 않게 옥상문 잠가

새해를 맞을 때마다 올해는 시를 한 편이라도 써야지 다짐한다. 누가 상처받거나, 아프거나, 죽거나 하는 앞에서도 무표정한 자본의 세계에서 이런 로망은 몇 해째 반복된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문득 자본 세계의 섬뜩한 무표정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느닷없이 삶의 나침반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면우 시인의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는 인간이 이처럼 느닷없이 나침반을 잃어버리기 전에 비슷한 걱정이나 아픔을 가진 것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는다. 늦은 나이에 이력서를 허리 숙여 내고 돌아온 밤, 난방비를 아끼려 거실에 난로를 피우고 온 가족이 함께 잠들었다 불씨를 살리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 가장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꺼진 불을 되살리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세상의 다른 아버지들과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러 날째 등 대고 자는 중인 여편네보다 먼저 눈뜨는 깊은 밤, 화격자 숨죽여 흔들면 불꽃은 식은 재 떨고 말짱히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렇다 이스탄불, 베이징, 신의주, 상 파울로에도 잠 못 이루는 사내들이 있어 꺼진 불씨를 되살려내려 애쓰는 중일 거다 어둠 속에서 잠든 가족의 얼굴을 오래오래 응시할 거다'('생의 북쪽' 중)

또 물탱크 점검 차 올라갔던 15층 아파트 옥상의 소복한 담배꽁초를 보면서는 혹시나 그 사내가 뛰어내릴까 봐 마음이 쓰여 그날부터 옥상문을 잠그기 시작한다. 연거푸 담배를 태우며 깊은 밤 멀리 도시를 응시했던 사내의 행적을 추측해보고 사내를 위해 애써 옥상문을 잠그는 것은 어쩌면 언젠가 그 사내이기도 했고, 그 사내가 될 수도 있는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끝내 주먹 불끈 쥐고, 입 꽉 다물고, 엘리베이터 타고/땅으로 내려갔을 것이다.//옥상으로 통하는 문 잠그는 일/그날 저녁부터 새로 늘어갔다'('어젯밤 아무 일 없었다' 중)

   
이면우의 시는 대개 그냥 지나치면 별것 아닌 사건과 존재를 곱씹으면서 자신의 고민과 삶의 무게를 함께 담아놓는다. 이 시인의 언어가 담백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미사여구를 부려 쓰지 않으면서 존재와 존재에 통로를 만들어내는 태도에서 나온다. 이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연결은 마흔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한 배관공이라는 시인의 독특한 삶과도 잘 어울린다.

시가 가진 힘은 미약하다. 멀리 있는 존재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확인, 고뇌와 슬픔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사실은 '나'이기도 하다는 느슨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고작이다. 이해관계에 얽혀 빠르게 흘러가는 세계에서 시가 점점 쓸모를 찾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난 이유이기도 하다.

   
2017년을 맞아 '시를 한 편이라도 써야지' 하는 다짐에 조금 더 힘을 주어본다. 멀거나 혹은 가까이 있지만 만나지 못했던, 느슨하게 연결만 되어 있던 존재들이 지난 연말부터 수백만 촛불이 되어 광장을 흐르고 있다. 그때부터 거리는 온통 사랑하는 이를 잃은 부모들, 친구들과 언니·동생들,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가득 차 촛불로 서로의 등을 쓸어주고 있다. 그 밝고 따뜻한 광장을 보면서 느슨한 연결의 깊은 힘을 다시 생각한다. 어떤 밤도,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런 밤 속에 우리는 깊이 연결된다.

  문화기획자·청년정책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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