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항쟁을 최초로 다룬 영화는 단편영화 ‘칸트씨의 발표회’로 알려져 있다. 한 사진작가가 1980년 5월 광주를 살아내며 미쳐버린 사내에 호기심을 느껴 관찰하는 내용을 극화한 영화다. 김태영 감독이 연출한 이 35분짜리 영화는 아시아 영화에 천착한 영화 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추천해 제 38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그게 1988년 2월이었다. 그러니까, 5.18 광주민주항쟁이 발생한 지 무려 8년째 되던 해였다.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영화는 8년간 봉인되어 있다가 해외 영화제를 통해서야 봉인해제될 수 있었다. 그 땐 그런 시대였다, 군홧발이 자유로운 표현을 짓밟았던.

시대가 바뀌면서 제법 서슬 퍼런 감독들이 1980년 광주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뭇 영화 팬들에게는 흥행 실패작 ‘성녕팔이 소녀의 재림’ 감독으로 알려진 장선우는 1996년 영화 ‘꽃잎’에서 광주를 제법 묵직하게 담아냈다. 이후엔? 알다시피 당시 광주시민 진압 작전명을 그대로 제목에 갖다 붙인 영화 ‘화려한 휴가’도 있었다. 강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은 광주 희생자 유가족들이 당시 대통령을 직접 사살하려는 복수극을 꾸미는 내용이다.

그리고 올해, 장훈 감독이 광주로 향한다. 내달 2일 개봉하는 영화 ‘택시운전사’ 이야기다. 영화 ‘고지전’, ‘의형제’ 등에 한국 근현대사를 가볍지 않게 다뤘던 장훈 감독이다. ‘택시운전사’가 개봉 전부터 화제 몰이에 성공한 이유다.

C#1. ‘춘자는 못 말려’

	(사진 = ‘택시운전사’ 예고편 캡처)

	(사진 = ‘택시운전사’ 예고편 캡처)

“아니 어떤 호구가 택시비를 10만 원이나 준대?” 동료 기사가 깜짝 놀라 송강호에게 말한다. 그럴 만하다. 1980년 당시는 영화나 극장마다 제각각이기는 했어도 대체로 1300원에서 2000원 사이로 티켓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택시비만 해도 그렇다. 지금이야 부산에서 거제도만 가도 10만 원이 넘지만, 당시 서울 택시기본요금은 500원이었다.

깜짝 놀란 송강호 뒤로 어딘지 추측하기 어려운 단관극장이 하나 있는데 웬 영화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포스터는 뜨겁게 웃겨 드린다는 영화 ‘춘자는 못말려’. 1980년 개봉한 영화 치고 포스터 카피 한 번 자극적이다. ‘불속조차 뛰어들 46kg의 위험한 불나비’. 그 나비 날 수 있는 거 확실하나? 나비 치고는 너무 무겁지 않나 싶었더니 역시나 연소자 관람불가다. 알다시피 요새는 ‘청소년 관람불가‘라 한다. 자세히 보면 포스터엔 ‘여러분의 國都’라는 소개도 있다. 이를 통해 송강호가 독일 기자를 접선한 곳이 서울 국도극장임을 유추해본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터가 남아있다. 1999년 10월 30일 철거됐다.

‘46kg짜리 불나비’를 맡았던 배우는 이영옥. 1979년 하길종 감독이 연출해 한국영화 고전으로 불리는 영화 ‘병태와 영자’에서 영자로 열연했던 배우로 익숙하다. 1994년 영화 ‘애수의 하모니카’를 끝으로 그녀를 더 이상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지만, 당대만 해도 개봉작에서 꽤 많은 주연을 맡았던 연기자다. 의도와는 무관하게 영화‘ 택시운전사’에 그녀가 출연했다. 장훈 감독이 철저히 고증한 덕분이다.

C#2. 씨스탠드, 힘내세요 조명부

	(사진 = ‘택시운전사’ 예고편 캡처)

영화 ‘군함도’ 예고편에서 붐 오퍼레이터가 단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면, ‘택시운전사’ 예고편에서는 조명부 활약이 돋보인다. 송강호가 촬영차들 사이를 걸어갈 때 옆으로 언뜻 보이는 쇳덩어리들. 씨스탠드(C-STAND)다. 보자마자 정신이 아득하다. 영화를 전공했거나 방송 제작 현장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은 봤을 법하다. 씨스탠드란 빛을 통제하거나 광선 강도를 조절하는 데 이용하는 스탠드를 말한다. 조명을 달아야 하기 때문에 꽤나 무거운 중량을 자랑한다. 저래봬도 4kg는 거뜬히 나가는데, 조명부 막내들은 저런 걸 몇 개씩 들고 옮긴다. 예고편 속 씨스탠드가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을 보니 조명부 막내 스태프 힘과 집중력이 보통은 아니겠다.

씨스탠드는 부속품으로 ‘앎(arm)’이라 부르는 팔이 달려 있는데, 이것만 똑 떼어서도 활용도가 있다. ‘택시운전사’ 조명부는 택시 조수석 쪽 천장에 ‘앎’을 단단히 고정한 뒤 운전석에 앉을 송강호를 비출 LED 조명을 달았다.

문제는 이 씨스탠드가 예고편에서는 ‘옥에 티’로 출연한다는 것. 송강호는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시위대를 피하려다 그만 택시 백미러를 부딪히고 마는데, 찰나에 백미러를 들여다보면 씨스탠드가 ‘까꿍’하고 있다. 일시정지 하면서 보지 않으면 잘 안 보인다. 참으로 귀여운 옥에 티다.

	(사진 = ‘택시운전사’ 예고편 캡처)

	(사진 = ‘택시운전사’ 예고편 캡처)

C#3. 위르겐 힌츠페터

서울에서 광주까지 10만 원을 준 ‘호구’, ‘아 유 리포터?(Are you reporter? - 당신은 기자입니까?)라 더듬더듬 묻는 류준열에게 대답 없이 사진을 찍고, 늦은 저녁을 얻어 먹다 총소리에 깜짝 놀라는 이방인. 그가 든 카메라에서 소속을 짐작해본다. ‘Deutsches Fernsehen’. 독일 공영 TV인 ZDF(Zweites Deutsches Fernsehen)이 그가 몸담은 직장이다.

	(사진 = ‘택시운전사’ 예고편 캡처)

위르겐 힌츠페터(Jurgen Hinzpeter). 알려진 바 그는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다 부상을 입은 종군기자로, 1973년부터 1989년까지 17년간 도쿄 지국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광주민주항쟁이 진행 중이던 1980년 5월 20일 오전에 광주로 잠입한다. 그는 23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취재한 현장 사진과 영상을 ZDF에 보냈다. ZDF는 이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그 해 9월 전 세계에 방영한다. 광주 참상을 알린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이다.

그뿐인가. 힌츠페터는 5공 말기인 1986년 11월에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위를 취재하다 사복 경찰에게 구타당하여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었다. 서슬 퍼렇게 살아 빛나던 저널리즘 정신에 경의를 보낸다. 아무래도 ‘택시운전사’는 그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영화 아닌가.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다.

안타깝게도 그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작년 1월 향년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택시운전사’는 그의 영전 앞에 국화 대신 놓일 헌화다.

INSERT CUT. [개봉영화 예고편.txt]은…

수년 전부터 영화 예고편은 단순히 영화를 보고 싶도록 만든 영상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상용화 등 기술 발달이 기점이라는 분석이지만 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생긴 다양한 수요자 욕구를 채우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도 보인다. 형태는 제각각이다. 코멘터리 예고편, 메인 예고편, 티저 예고편, 런칭 예고편, 캐릭터 예고편, 1차 메이킹 예고편, 2차 메인 예고편, 30초 예고편……. 크게 다를 것 없는 내용 속에서도 조금씩은 차이를 두고 있다. 그래서 예고편만 쭉 봐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꽤 많다. 국제신문 디지털뉴스팀에서는 공식 SNS, 홈페이지를 통해 매주 목요일 주 1회 개봉예정작 예고편을 꼼꼼히 살핀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신동욱 기자 i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