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춘기에 겪은 이별과 상실감
- 세월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다
- 주변 소중한 사람·사물·자연
- 어디서 시작해 어떻게 왔는지
- 깊숙이 들여다보다 시인으로

- 수평으로 누운 사다리 같은 철길
- 시인은 그 곳에서 시를 생각한다

매일 배달되는 신문 사이에 끼어 함께 오는 광고 전단지를 묶어 시를 쓰는 엄마가 있었다. 종이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노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세상의 일들을 담은 기사, 그 흐름을 읽어내는 사설과 칼럼, 상식과 정보…. 신문에 묻어온 전단지는 그냥 종이가 아니었다.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는 엄마, 깨끗한 뒷면이 있는 전단지들을 묶어 시를 쓰는 엄마를 본 아이들은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오면서 전단지를 들고 왔다. “엄마, 시 쓰는 종이 가지고 왔어!” 시를 쓰던 엄마는 마침내 시인이 되었다. 바로 전다형 시인이다.

전다형 시인이 해운대 청사포 폐선 철길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전 시인은 “철길을 걸으며 시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 연필을 깎으며 詩를 쓰다

전 시인은 청사포에서 구덕포까지 이어진 폐선 철길을 함께 걷자고 했다. 그는 틈틈이 이 길을 걷는다. 혼자서 철길을 걸으며 바다도 보고, 내면도 들여다보고, 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시가 안 될 때 내 마음을 꺼내어 거풍하듯이 이 길을 걸어요. 이 철길이 수평으로 누운 사다리처럼 느껴져요. 본래 사다리는 위를 올라가기 위한 거죠. 위를 향해 놓인 사다리를 오르며 끝없는 욕망을 향해 가다가 잘못 내디디면 허방에 빠질 수가 있는데, 누워있는 사다리는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전다형 시인은 1958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한 뒤 혼자 자취하며 마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방송통신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부경대에서 ‘한하운 시의 고통 연구’로 문학석사를 받았고, 현재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그에게 “넌 시인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고, 국어 선생님들도 그렇게 말할 정도로 글을 잘 썼고, 상도 많이 받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많이 노력했어요.” 그가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걸 알고 있던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해마다 전화를 해주었다. “올해에는 네 이름이 없더구나. 더 좋은 시 쓰라고 떨어진 거란다. 원래 귀한 것은 늦게 이루어지더라.” 귀하고 감사한 전화였다.

그는 일곱 번 신춘문예에 낙선하고 여덟 번째 응모로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칠전팔기였다. 시를 향한 변함없는 그의 사랑과 노력을 아는 사람들이 그를 축하하며 ‘전팔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 시인은 등단 10년만인 2012년에 시집 ‘수선집 근처’를 출간했다. “시집이 나온 뒤 한 달 정도 매일 한 번씩 시집을 읽었어요. 드디어 내 영혼의 집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 시집 첫 페이지에 시 ‘연필에 대하여’가 실려 있다. “전단지 뒷면은 내 시의 초고를 쓴 최초의 시발지였는데, 연필로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기 전에 늘 연필을 뾰족하게 깎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첫 시집을 낼 때 맨 앞자리에 이 시를 놓아두고 싶었던 시인의 소망대로 ‘연필에 대하여’는 그의 영혼의 집을 열어주는 시가 됐다. “적당히 눈 감고 살아온 생을 연필깎이에 넣어 빙빙 돌린다 톱날은 신이 나 죄의 비늘을 쳐낸다 물관부의 투명으로 눈뜨고 싶다 뾰족하게 깎은 영혼으로 생의 역사를 다시 쓰고 싶다 연필이 깎인다 뾰족한 심이 일어나 세상의 허를 찌르는 광휘를 엿본다”는 시 구절은 시인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몇 페이지 넘어가면 만나는 시 ‘지우개밥’과 짝을 맞춰 읽으면 시를 쓰는 시인의 손이 보이는 듯하다.

■ 이것도 詩구나, 너도 詩구나

수선집 근처 - 전다형/푸른사상/2012

전 시인은 늘 웃고 있지만 눈물도 많다. 늦게 본 막내딸을 지극히 사랑했던 아버지를 열여섯에, 어머니를 스물여섯에 여읜 슬픔은 세월이 갈수록 더 깊어졌다. “사춘기에 겪은 혹독한 죽음과 상실감, 이사하면서 고향의 친구들과 헤어지는 이별…. 그런 것들이 두려워 늘 울었지요. 친구들은 나를 울보로 기억해요. 밝은 그늘이 깊은 그늘을 만든다고, 내 웃음 뒤에는 그늘이 깊은 거지요. 그런데 그 환경이 나를 시인으로 만든 겁니다.” 아픔을 몸속 깊이 새긴 그의 눈에 비치는 사람도, 사물도, 자연도, 시가 되었다. “제 주변을 보면서 이것도 시구나, 너도 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디서 시작해 어떤 길을 흘러 내 앞까지 왔는지 오래 들여다보았어요.”

그래서일까. 시집을 읽는 것은 시인의 시선이 닿았던 시적 대상이 살아온 내력을 아는 일 같다. 시 ‘구서동 신(新) 서동요’가 그렇다. “환하게 불 밝힌 상가 그 가까이에도 가지 못한 채 어둔 언덕길 위 돌멩이로 남아 손수레 받쳐 놓고 군고구마를 굽고 있는 부부, 나는 백제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가 세상 구경 나왔으리라 믿으며 그 부부를 구서동의 사랑이라 불러 봅니다” 시인은 어느 골목을 걸었을까, 몇 년을 지켜보았을까. 아득한 옛날의 사랑을 다시 불러낸 그 부부를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전 시인은 두 번째 시집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 문학지에 발표한 시 100여 편, 새로 쓴 시 50여 편이 그의 손끝에서 익어가고 있다. 그의 마음이 또 한 채의 집을 지을 것이다. 책 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