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릉산 자락에 둥지 튼 천년고찰
- 절 입구 작고 소박한 문 정겨워
- 여느 절과 달리 사천왕상 없어
- 5층석탑·대웅전·석등 등 눈길
- 병이 낫는다는 약수도 유명

경남 함안군 칠원읍사무소에서 맞은편 도로를 따라 3여 ㎞ 가다 함안칠원운서농공단지 쪽으로 좌회전한 후 무릉산을 보고 2.5㎞ 산길을 오르면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의 장춘사(長春寺)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장춘사는 신라 흥덕왕 때의 고승인 무염국사(또는 무릉)가 세운 1200여 년 된 고찰로 고요하고 아늑함을 준다. 장춘사란 명칭은 ‘무릉도원은 사시장춘(四時長春)’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절이 위치한 곳이 무릉산인 데다 지명이 무릉리이며 이곳의 경치가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절경이다.

산 아래에서 산길을 따라 장춘사까지 가는 동안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간간이 스며드는 햇빛은 주위를 더욱 아름답게 하며 맑고 시원한 바람은 마음마저 평온하게 한다. 한국의 걷고싶은 길로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움을 간직한 길이다.

	경남 함안군 칠북면 무릉산 중턱에 위치한 전통사찰 장춘사 전경. 전통사찰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규모가 작은 절이나 12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노수윤 기자

■들풀처럼 몸 낮추게 하는 일주문

장춘사로 들어가기 전 2개의 문은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함이 있다. 하나는 사립문. 절의 문이 사립문인 곳은 아마 장춘사 밖에 없는 듯하다. 사립문 바로 옆의 일주문도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름을 준다. ‘무릉산 장춘사’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은 절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고 작아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신을 들풀처럼 낮추게 된다.

대부분 일주문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상도 없는 등 일주문부터 여느 절과는 대비된다. 그러나 주지 경암스님은 “절의 규모가 사천왕상을 설치하거나 일주문을 크게 할 정도가 아니다”라며 “사립문은 30여 년 전 절을 처음 찾았을 때도 있었을 만큼 오래 전부터 있었고 2년마다 새로 달아야 해 엄청 손이 가는 문이지만 정겨움이 있는 문”이라고 말했다.

절 마당에 들어서자 조용하다. 산사의 적막함이 밀려온다. 1200여 년 된 고찰이나 대웅전과 약사전, 산신각, 독선각, 조사전 등으로 구성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절이다.

대웅전은 1979년 새로 지은 건물이고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은 하얗다. 1660년대 옥색이 나는 경주옥돌(경주불석)로 만든 후 하얀 횟가루를 칠한 것이며 바라볼수록 경건함을 준다.

이 절에는 한국의 좋은 물 100곳 가운데 하나인 약수가 있다. 한국자연보호협회가 1987년 선정했다. 장춘사 약수는 무염국사의 제자 덕원스님의 병을 낫게 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효험을 자랑한다. 1200여 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지면에 드러나지는 않으나 대웅전 뒤에 수원지가 있고 대웅전 옆 용왕각을 돌아 절 마당으로 흘러 나온다.

■인연의 끈을 이어주다

경암스님은 “‘장춘사에서 기도해 자식을 못 낳으면 사주팔자에 없다’라는 말이 있다”며 “지금까지 숱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해 자식을 봤다. 나 역시 부모께서 장춘사에 기도해 낳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장춘사가 자리한 이곳의 지형이 여자가 출산하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절을 찾는 사람이나 신도 중 70, 80대의 경우 대부분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지금은 보수 중이라 볼 수 없으나 약사전 벽에는 부모은중경 벽화가 있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10가지로 나눠 설한 경전이다. 한 폭 한 폭에 부모의 은혜를 그려놓았으나 보수를 하면서 뜯었다. 경암스님은 보수 후에 다시 벽화를 그려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게 할 것이라고 했다.

산신각 앞에 서면 아주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산신각의 산신이 지리산의 산신(여신)을 마주보고 있는 모습으로 겨울에는 천왕봉에 내린 하얀 눈이 보일 정도다.

■곳곳에 유물

장춘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경남유형문화재인 5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신라 시대의 흔적이 남은 것은 탑의 기단부뿐이다.

원래 2층 기단 위에 세운 5층 석탑이었으나 현재는 4층만 남아 있다. 높이는 3.9ｍ이며 탑의 모양은 날렵한 느낌을 준다. 지금 남은 것은 제작수법과 양식으로 미뤄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경남문화재자료 제16호이다. 대웅전 뒤편에 있는 약사전에는 약사여래좌상이 있다. 1983년 문화재로 지정됐고 높이 94㎝, 흉위 40㎝로 자그마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왼손에 약 항아리를 들고 오른손은 부처가 악마를 누르고 깨달음을 이루는 순간을 형상화한 항마촉지인을 한 전형적인 약사여래불이다. 특히 머리 부분의 연꽃과 불꽃 무늬가 이채롭다. 현재의 불상 모습은 원래의 석불에 금박을 입힌 것이며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내 한 쪽에 놓아둔 석등 하단부는 최근 고려 시대의 것으로 확인될 정도로 곳곳에 유물이 있다. 보수를 위해 땅을 파면 유물이 나올 정도다.

노수윤 기자 synh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