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기획자 이명수
-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 세월호 유가족·피해자 치유에
- 온 힘을 다한 사람
- 그가 시의 치유력을 말했다
- 마음 속 지옥을 빠져나오는
- 지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이명수의 ‘내 마음이 지옥일 때’를 꺼내 막 읽으려던 참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중년여성이 책표지를 보더니 말을 건넨다. “어떤 내용이에요?” 책 제목이 바로 자기 마음이라며 그는 폰카메라로 표지를 촬영했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마음이 온통 지옥이거나, 한구석이 지옥이거나.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게 아닐까. 그러니 저 제목에 끌리는 것이리라.

이명수 심리기획자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저서 ‘내 마음이 지옥일 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시와 치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에는 많은 시가 있다. 시인이 어떤 의도로 썼건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서 또 다른 파장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마음에 와닿는 시 한 편은 강렬한 폭풍일 때도, 잔잔한 물결일 때도, 부드러운 산들바람일 때도 있다. 치유의 힘을 가진 시를 권하는 책의 저자, 이명수를 서울에 있는 그의 일터에서 만났다.

■시가 뿜어내는 치유적 공기

내 마음이 지옥일- 이명수 /해냄 /2017

이명수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상처받은 마음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활동하는 심리기획자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심리치유 공간 ‘화락’을 기획했고,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으로 이주해 치유공간 ‘이웃’에서 유가족과 희생자의 친구 등 피해자들의 치유 과정에 온 힘을 다했다. 한겨레신문에서 ‘이명수의 사람그물’을 연재하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발표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준다. 저서로 ‘그래야 사람이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등이 있다.

서울로 만나러 가기 전, 저자는 가을이니 야외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며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 지도를 메시지로 친절하게 보내주었다. 오후의 삼청동 길에는 가을 햇볕이 따사롭게 내렸다. 고운 빛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일.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그 속에서 시가 주는 치유의 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는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부터 시를 읽었다. 수만 편을 읽었고. 특별히 끌리는 수천 편의 시는 언제든 뽑아 읽을 수 있도록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시를 읽는 일이 행복했고, 중년 이후 심리치유 관련 일을 하면서 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여러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 시가 뿜어내는 치유적 공기에 매료됐다. 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느끼는 대로 시를 읽는 일이 더 흥미로워졌다.”

시는 언제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까. 책의 목차를 보면 시 한 편과 함께 건네는 저자의 말이 들린다. ‘징징거려도 괜찮다’. 이 말만 들어도 응어리진 마음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다. 실컷 징징거리고 싶다. ‘기승전 내 탓 금지’. 그렇지, 왜 내 탓이란 말인가. ‘억울함이 존재를 상하게 할 때’. 누군가 내 억울함을 알아준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들 나만큼 힘들고 외롭다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런 크고 작은 상처들 위에 저자는 시를 놓아두었다. 저자가 권하는 ‘시 처방’이다.

■지옥을 빠져나오는 지도

“유행가 가사가 귀에 확 꽂힐 때가 있죠. 그럴 땐 그냥 따라 부르면 돼요. 작사가, 작곡가와는 아무 상관 없어요. 시도 시인과 상관없이 나만의 해석으로 읽으면 됩니다. 그건 ‘오독’과 달라요. 편하게, 좋은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그는 시를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귀한 능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시의 우물은 넓고 깊어서, 읽는 사람마다 다각도로 해석되더군요.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시를 읽어도 저마다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다른 시가 되는 거지요. 중년남성, 주부들이 ‘시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시를 제대로 만났다’고 좋아하는 걸 봤습니다. 자신을 위한 시라면서 우는 분들도 있었지요.” 그때의 시 한 편은 시인과 상관없이 ‘내 시’가 되고, 한 사람을 치유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간의 공부와 현장 치유 경험에 의하면, 사람들 마음속은 대체로 지옥이다. 겉으론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최소한 아수라다”라는 책 속의 문장처럼 우리 마음은 매 순간 들끓는다. 저자는 시가 그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지도를 만들어주는 가장 적합한 도구라고 말한다. 치유의 힘을 가진 시의 매력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정할 때 ‘지옥’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놓고 본론’을 들이대는 제목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말이다. 그는 또 이 책이 실용서라고 말했다. 마음속의 지옥을 겪어내는 고통에는 급이 있는 게 아니란다. 남들이 보기에 생채기일지라도 겪어내는 사람에겐 큰 상처일 수 있다. 그럴 땐 징징거리고, 아프다고 비명 지르는 게 당연하다. 살아야 하니까. 지옥에서 빠져나와야 하니까.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지옥이 저자의 말처럼 ‘수많은 주관적 지옥’일 수 있다. 그 지옥을 벗어날 지도를 만드는 치유 도구인 시를 처방하고 있는 책이니 실용서라는 거다.

오랜 기간 현장 치유를 통해 임상 경험을 거친 시와 저자의 처방은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치유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펼치는 독자들에게 이 말을 전한다. “당신이 옳습니다!”

책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