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위도가의 짓-김진홍 한량무’
- 대가의 춤을 길 가다 보는 낭만
- 기획에 비해 아쉬운 서사·진행

지난 24~27일 예술공동체 예인청(대표 황지인)이 기획한 ‘무위도가의 짓-김진홍의 한량무’ 공연이 상징성 높은 장소에서 열렸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 농심호텔 앞 야외광장이었다.

지난 27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야외 특설무대에서 열린 ‘무위도가의 짓-김진홍의 한량춤’ 공연에서 무용수들이 한량무를 테마로 한 춤을 추고 있다. 사진가 박병민 제공

우리 옛 예술의 고갱이를 표현하는 멋진 낱말로 ‘풍류(風流)’가 있다. 부산 풍류의 본고장은 동래였고, 그 심장부가 온천장이었음은 널리 인정받는 바이다. 부산 풍류의 추억과 명성이 살아있는 온천장 한복판에서, 부산 춤의 한 절정인 김진홍 선생(부산시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 한량춤 예능 보유자)의 한량무를, 현대의 관객이 잘 즐길 수 있게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만든 작품이라 하니 꽤 탐스러운 기획이었다.

지난 27일 저녁,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 시작 전부터 관심을 끄는 요소가 둘 있었다. 무대와 관객이었다. 농심호텔 내당(한식당) 앞 널찍한 정원에 특설무대를 차렸는데,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잘 생기고 훤칠한 소나무와 바위, 풀숲을 그대로 무대장치이자 무대 배경으로 살려서 활용했다. 무대 아래에는 악사들이 앉았다. 객석은 무대의 삼면을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했다. 공연장에서 흔히 보는 ‘프로시니엄 (관객이 정면만 바라보도록 배치된 무대)’이 아니고 우리 전통 마당극 무대와 비슷했다.

홀로 춤을 추는 김진홍 선생(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예능 보유자)

가을밤, 나무와 풀과 바위가 그대로 무대가 되고, 악사들이 연주하는 공연장이 펼쳐지자 관객들은 “좋네, 좋네” 하며 달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온천장 한복판의 야외이고, 객석을 들고나는 관객 진입로를 여러 곳 마련해 사람들은 ‘자유롭게’ 객석을 드나들었다. 행인이 “어? 공연하네” 하면서 객석에 들어와 앉으면 관객이 됐고, 한참 공연을 보던 관객이 “집에 가자”며 보채는 손주의 어리광을 못 이겨 일어서면 다시 행인이 됐다. 옛날부터 내려왔을 ‘한국식 거리예술’ 특징이 살아났다.

이 공연은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BOF)’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마련됐다. 지난해 처음 열린 BOF는 부산에서 열리는 한류 스타와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인데, 올해는 ‘메이드 인 부산-지역 공연 육성 부문’을 신설해 공모를 거쳐 전통예술에 바탕을 둔 부산 젊은 공연예술인들의 단체 예인청이 기획한 ‘무위도가의 짓-김진홍의 한량무’를 선정했다. 예인청이 공연장소로 농심호텔 앞 야외광장을 원하자, 농심호텔 측도 적극적으로 편의를 봐주며 후원했다고 한다.

이렇게 예술가를 중심으로 많은 이의 협업으로 탄생한 ‘무위도가의 짓’은 나흘 내내 250석 객석을 채웠고 동래한량춤, 살풀이, 입춤, 검무, 재주, 국악 연주로 온천장이 풍류로 물들게 했다. 신명과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부산 춤을 지켜온 원로 김진홍 선생께 젊은 춤꾼들이 헌정하는 작품이었다는 의미도 컸다.

이 공연은 ‘부산다운 거리예술’의 가능성에 관해 부산 예술계에 과제를 던지는 계기도 됐다. 올해는 부산 거리예술의 실질적 ‘원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예술적 시도가 많았다. 부산문화재단이 주도한 프로젝트로 극단 세진의 ‘부산거리예술대첩’과 거리예술창작단 사하라의 ‘2017 부산원도심거리춤축전-유체도시 만들기’가 있었고, 금정문화재단이 집중력을 발휘한 ‘부산거리예술축제’도 주목받았다. 다른 크고 작은 실험은 이어졌다.

먼저, 부산 예술계가 현재 주목하는 거리예술의 올해 성과와 한계를 정밀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는 결산의 장이 필요하다. 장·단점을 두루 토론하고, 계승하고 반성할 것을 가리는 작 업이 있어야 한다.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와 보완도 필요하다. ‘무위도가의 짓’의 경우 김진홍 선생과 젊은 예술인들이 선보인 동래한량춤, 살풀이, 검무 등 개별 춤은 좋았으나 전체 흐름이 과연 매끄럽고 세련됐는지 돌아봐야 할 과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방식에 너무 신경을 썼기 때문인지, 서사적 요소가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장면이 몇 차례 있었다는 판단이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