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우였던 음악평론가 강헌
- 록밴드 정신에 집착한 사실 등
- 팬이라면 관심가질 정보 기록
- 그가 보인 용기에 대한 고찰도
“1988년 12월의 체조경기장. 본선에 진출한 열한 개 팀 중 열 번째 팀의 순서가 끝났을 때만 해도, 대금 간주가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전통음악 풍의 자작곡 ‘고인돌’을 절창한 주병선의 그랑프리 수상이 유력했다. 그러나 마지막 출전 주자 ‘무한궤도’가 무대 위에 등장하고 트윈 키보드에 의한 25마디의 전주가 울려 퍼지는 순간, 게임은 이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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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마왕이라 불릴 만큼 교주적인 카리스마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수다쟁이 동네 오빠 같았다고 강헌은 회고한다. 음악을 미친 듯이 사랑해서, 자신의 전부를 음악에 쏟아부은 시대의 천재였다. 국제신문 DB |
TV로 1988년 대학가요제를 본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이미 소름이 돋을 것이다. 나른한 세상을 향해 강한 빔을 쏘는 듯한 전주와 젊디젊은 신해철의 불안정한 저음으로 시작된 노래 ‘그대에게’. 그 이후 20년 넘게 수많은 청춘은 신해철을 마왕(때로는 진심으로, 때로는 우스개로)이라 부르며 그의 혁신적인 노래들을 업데이트하고, 거침없는 발언에 환호하고, 또는 짜증 내고, ‘프란체스카’ 연기에 배를 잡고, 그가 진행한 퀄리티 낮은 재연 프로를 ‘욕하면서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잃었다. 사회인이 된 청춘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지만, 노래방 마지막 곡으로 ‘그대에게’를 합창하려고 추가 시간을 구걸하거나, 누군가 ‘일상으로의 초대’를 선곡해 버리면 ‘여름 이야기’ ‘민물장어의 꿈’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부터 ‘Lazenca, Save us’ 같은 말도 안 되는 고난도 곡을 줄줄이 예약하면서 그를 추모한다.
가수 신해철 3주기를 맞아 친우였던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이 그를 기리는 책을 냈다. 록의 제왕? 음악 천재? 어떤 수식도 모자라고 어색하다. 책 제목은 그냥 신해철이다. “나는 그가 좋았다. SF·판타지를 좋아한 대한민국의 음악 청년. 그의 집요한 광기와 좌충우돌의 불화, 어떨 땐 해학적이기까지 한 허세와 그 뒷면의 대책 없는 섬세함까지….”’ 이 책은 어이없는 의료사고로 신해철을 보낸 친구의 추도사이기도 하고,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평론가가 의무감으로 남기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대에게’가 하룻밤 만에 만들어진 곡이라는 사실 외에 무명 록밴드를 단숨에 세상으로 밀어 올리려는 대학 2년생의 치밀한 전략으로 탄생했다는 것, 신해철이 솔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서도 그 과실을 대한민국 대중음악이 배척하던 밴드 활동에 남김없이 쏟아부을 정도로 록밴드 정신에 집착했다는 사실 등 신해철의 팬이라면 귀를 기울이게 되는 정보가 많아서 든든하다.
신해철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 답답해 본 적 있다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당대의 두 천재이자 헤비메탈 키드인 신해철과 서태지를 비교한 대목도 흥미롭다. 록 음악의 진정성을 둘러싼 어젠다가 과격하게 증폭됐을 때, 소통을 차단하고 신비주의를 취한 서태지와 다양한 매체에서 자신의 견해와 철학을 주저 없이 표명한 신해철이 맞닥뜨린 저항은 달랐다. 신해철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음악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부당한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그는 어떤 어젠다에 대해서도 애매하거나 모호한, 혹은 노회한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선명한 논지를 격렬하게 펼쳤다.… 그는 두려움과 무모함을 넘어 진정한 용기를 행사한, 1980년대 세대로서의 시대적 책무에 응답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