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발산업의 역사·문화 오롯
- 실제 노동자들 수기도 담아

부산진구는 신발로 먹고살았다. 동네마다 신발공장이 있었고, 신발공장 다니는 사람도 꼭 있었다. 1960년대 부산진구 신발은 ‘한국 대표’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신발 대기업 7곳 중 6곳이 부산진구에 있었으니 말 다 했다. 1970년대 기술과 디자인은 더 발전했고, 세계 신발시장은 부산진구를 주목했다. 1980년대 부산진구의 신발 기술력은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리복이며 나이키며 세계 최고 운동화가 부산진구에서 생산됐다.

부산 신발산업의 전성기 때 부산진구 태화고무에서 신발을 만들고 있는 근로자들 모습. 부산진구청 제공

1980년대 말 세계 경기가 급속히 악화됐고 1990년대는 추웠다. 부산진구 신발산업도 쇠락하고, 신발 좀 만들어 달라고 사정하던 나이키 같은 곳도 변심했다. 신발공장은 폐업하거나 외국으로 옮겨갔다. 신발 대기업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부산진구 신발이야기 책 ‘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가 나왔다.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지원 사업에 선정돼 부산진문화원이 펴냈고, 동길산 시인이 썼다. 비매품이다. 국제신문이 지난해 6회에 걸쳐 기획시리즈로 다룬 부산신발 이야기(‘신발의 도시 부산, 그 속에 숨은 스토리’)에서 ‘산업’과 ‘근로자’에 대한 고찰이 더 깊어졌다. 글쓴이는 말한다. “이 책은 일종의 헌화가”라고. 추억의 고무신에서 세계 최고 고급 운동화까지 만든 부산진구 신발회사와, 그 회사에 다녔던 이들에 대한 헌화가라고. 굴뚝산업이라고 핀잔받은 신발은 못 살던 시절 한국 경제를 떠받친 기둥이었고, 공돌이 공순이라 폄훼했던 신발공장 노동자는 집안을 떠받친 기둥이라고.

부산진구를 중심으로 발달한 신발산업에 기대 한 시대를 살아낸 부산에서 신발의 의미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산업으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동시대의 감성과 추억이 있고, 아빠 엄마가 신발공장에서 벌어온 돈으로 밥 먹고 공부한 자식 세대의 빚이 있다. 연구원 아닌 문학가가 자료 조사를 토대로 그 영락을 기술한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야기는 일본 고무신이 조선에 들어와 신발산업을 태동하게 한 1910년대부터 시작한다. 일본계 기업과 향토자본이 각축하며 일으킨 부산 고무산업 붐과, 그로 인해 본격적으로 일어난 신발산업을 탐구했다. 1970년대부터 누린 산업의 영화와 과잉생산, 자체 브랜드 부재, 경기 악화 등으로 서서히 쇠퇴한 신발산업의 개요를 다뤘다. 중반부터는 얘기 삼아 읽을 만한 글이 가득하다. 슈퍼카미트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대양고무와 창업주 일가 스토리, 여전히 세계적 기업인 화승그룹의 모태 동양고무와 ‘나이키’의 사연, 한때 부산 신발산업 그 자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삼화고무의 절정과 몰락 등이 세세하게 담겼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을 가능하게 하고 쇠퇴의 아픔을 온몸으로 함께한 신발 근로자들의 수기가 있다. 마지막에는 신발산업을 ‘과거’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는 부산의 노력과 가능성을 비춘다. 새 신을 신고서 폴짝!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