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A 황승택 기자의 투병기
- 무균실 격리라는 고립된 공포
- 골수액 빼내는 상상초월 고통
- 같은 병동 환자 인터뷰하기 등
- 좌절 대신 희망 찾는 여정 기록

언론 환경이 바뀌었다. 전통적인 언론관은 객관적 시각의 유지였다. 기자는 관찰자와 전달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심지어 예전 한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무고한 시민이 흉기를 든 강도에게 위협받는 현장과 맞닥뜨렸을 때 기자는 관찰자에 머물러야 할지, 시민을 구해야 할지 물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독한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져 일부러 ‘민머리’를 만든다. 황승택 기자도 출장 전문 이발사의 도움으로 머리를 밀었다. 오른쪽 사진은 황 기자. 민음사 제공

최근 언론은 달라졌다. ‘체험’이란 단어를 앞세워 더는 관찰자이기를 거부한다. 기자가 탄광에 들어가고, 119 구급대원이 되고, 철거민과 함께 살고, 고시원에서 한여름 혹독한 더위를 견디는 등의 체험 기사가 트렌드가 됐다.

이번 주 기자의 체험을 담은 책이 한 권 나왔다. 우르르 쏟아진 신간 중에서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라는 제목을 단 책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이번에는 암병동에 들어가 일주일 정도 환자들과 생활했겠구나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책을 들었다. 아뿔싸, 틀렸다. 체험은 맞는데 보통 체험이 아니다. 백혈병에 걸린 기자의 처절한 투병기다.

우선 저자부터 소개한다. 채널A 뉴스 황승택 기자다. 2004년 MBN 공채로 기자생활을 시작해 2011년 채널A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2013년 신문기자로 변신해 1년 동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방송기자로 복귀했다. 기자 생활 황금기인 11년 차를 바쁘게 보내던 2015년 10월 황 기자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오전에 검사를 받고 오후에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을 만큼 심각했다. 그리고 그를 덮친 건 끔찍한 고통.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바늘을 골수에 꽂아 골수액을 빼내는 등 상상할 수 없었던 고통의 과정을 거쳤다.

더 힘든 것은 격리였다. 특히 암 환자들은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고립감으로 힘겨워한다. 무균실에서 외롭게 싸우던 황 기자는 페이스북에 투병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인 항암 치료에 들어간 황 기자는 조혈 모세포(골수) 이식이 가능한 공여자를 찾았다. 운이 좋았다. 2만분의 1의 가능성이 현실이 된 것이다. 2016년 2월 골수 이식을 받고 빠르게 회복했다. 꿈에 그리던 회사로 복직을 두 달 앞둔 2016년 12월 2차 발병했다. 황 기자는 절망했다. 그런 그를 의사가 꾸짖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직업 정신이 발동한다. 외국 의약품이 더딘 통관 절차로 늦게 도착하자 문제점을 파헤치겠다며 병상에서 취재를 하고 같은 병원에 입원한 중동 환자를 인터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의료 전문기자를 꿈꾸기도 했다. 의사 출신 의료 전문기자는 있지만 암환자 출신 의료 전문기자는 없다며.

그는 올해 초 3차 발병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공여자를 찾아 골수 이식을 했다. 현재 재활 중이며 복직을 준비하고 있다. 3년이 넘는 투병생활 동안 황 기자는 많이 달라졌다. 타인의 인정보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으로 두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무작정 희생하지 말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담아 갔으면 하는 것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잠시나마 돌아보는 여유입니다.”(227쪽)

황 기자의 무사 귀환을 빈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