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3월 25일 밤, 파키스탄령이던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에서 독립을 저지하려는 파키스탄 군인의 총칼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당시 동파키스탄 여성 수십만 명이 파키스탄 군인에게 위안부로 끌려갔다. 전쟁은 그해 말까지 9개월 동안 이어졌고 12월 동파키스탄은 분리 독립해 새로운 국가 방글라데시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위안부 여성들은 ‘비랑가나’란 이름으로 호명됐다. 비랑가나는 ‘용감한 여성’이란 뜻으로 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호칭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남편, 가족, 공동체에서 버림받게 된다.

책은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여성 매리엄의 시각으로 방글라데시의 독립전쟁을 보여준다. 주인공 매리엄은 1971년 전쟁 당시 대학생으로 지식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동생을 고향에 보내고 혼자 수도에 남아 있다가 적군인 파키스탄 군인에게 붙잡혀 비랑가나가 된다. 전쟁 후 남성들은 영웅 또는 전범이 되거나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반면 비랑가나들은 창녀로 전락하거나, 국가가 주도하는 재활사업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버티며 개인적으로 삶을 꾸려가게 된다.

방글라데시 여성 작가인 저자는 1971년 구술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비랑가나 여성들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 전쟁의 참사와 여성들의 피해를 소설로 재구성했다. 전쟁이라는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어떤 남성들은 어떻게 사라지고 또 몇몇은 어떻게 위장해 살아남는지, 살아남은 이들은 무엇을 잃은 채 살아냈는지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랑가나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쏟아낼 수 있는 회담,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살아낼 수 있는 연대와 전범 재판을 원했음에도 대중에게 잠깐 주목받다가 결국은 잊히는 슬픈 운명을 맞이한다.

그들의 삶에서 지금도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와 성범죄 피해 여성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