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지 정부 문명개화 정책
- 쇠고기 보급 적극 나섰지만
- 공급 달리자 돼지고기도 장려
- 일본인 입맛 맞게 요리 개발
- 돈가스 원조는 ‘홀커틀릿’
- 커틀릿은 ‘가쓰레쓰’로 번역
- 돼지 뜻하는 한자 ‘돈’과 결합
- 최종적으로 ‘돈가쓰’로 정착
- 한국엔 일제강점기 때 전파
- 1960년대 대중에 널리 퍼져
-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 국내 대표 외식메뉴로 등극
돈가스는 우리나라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 당시는 돼지고기로 된 튀김 요리가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경양식집이 널리 생긴 1960년대로 추정된다.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경양식집의 돈가스는 ‘포크 커틀릿’ 조리법에 따라 얇게 튀겨진 서양식 요리였다. 현재 경양식집은 거의 사라졌고 이 서양식 돈가스는 분식집 등에 남아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일본식 돈가스 음식점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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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좋게 미리 자르고 채 썬 양배추를 듬뿍 곁들인 전형적인 일본식 돈가스. 공미희 제공 |
에도 시대 초기 중국에서 돼지가 류큐(琉球·지금의 오키나와)를 거쳐 사쓰마(薩摩·가고시마현)에 전해졌다. 돼지가 주요 재료로 사용된 요리인 사쓰마국(薩摩汁)은 당시 육식금지령이 시행되고 있었음에도 규슈에 거주하는 무사와 난학자(蘭學者), 난의(蘭醫)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면서 에도(도쿄)에도 알려졌다. 한편,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돼지를 사육하면서 나가사키에도 돼지가 보급됐으며 데지마(나가사키에 있던 네덜란드인 거주지)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돼지로 햄이나 소시지를 만들어 먹었다. 그래서 나가사키와 사쓰마에서는 돼지고기를 공공연히 먹는 습관이 일찍부터 나타났다.
■서민들에게 점점 높아지는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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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쿄 긴자에 있는 1895년 개업한 돈가스집 렌가테이. 공미희 제공 |
메이지 시대 초기 일본 정부에서 부국강병 및 문명개화 정책으로 서민에게 쇠고기 보급을 추진했지만, 돼지고기는 새 정부의 문명개화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오랫동안 경원시했다. 서민 사이에도 돼지고기는 쇠고기만큼 체력을 서양인처럼 튼튼하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돼지우리는 악취가 발생하고 불결하다는 인식이 많아 돼지고기에 대한 관심은 낮았다.
그러나 다양한 외국인과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서양식’을 통해 서서히 돼지고기가 서민에게 익숙해졌고, 1882~1883년 도쿄에서 돼지고기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또한, 병사의 식량으로 보급하던 쇠고기의 부족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00년 미국과 영국에서 씨돼지를 수입해 본격적인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어느 양돈가는 여성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요리로 시식회를 열었으며, 돼지해부학 권위자인 도쿄대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교수의 ‘다나카식 돼지고기 조리’ 출판 등을 통해 다양한 요리를 고안했다. 이렇게 일본 서민은 돼지고기에 점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돈가스 탄생의 기반이 서서히 구축되어 갔다.
또한, 청, 러시아와 치를 전쟁에 대비한 군비 확대 정책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병사의 음식에 커틀릿 같은 양식·육식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서민에게 쇠고기 및 돼지고기 요리가 전파되는데 이 또한 돈가스 탄생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돈가스의 어원은 프랑스어 ‘코틀레트’인데 ‘코트’는 송아지, 양, 돼지의 뼈에 붙은 등심과 등심 형태로 자른 고기를 말한다. 영어로는 커틀릿(Cutlet)인데, 이 커틀릿이 1860년 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서 ‘화영통어(華英通語)’에 ‘Cutlet-가쓰레쓰(吉烈)’라고 표기되어 일본에서는 ‘가쓰레쓰’로 불렸다. 1872년 가나가키 로분의 저서 ‘서양요리통(西洋料理通)’에서 ‘홀커틀릿’ 요리가 소개됐고, 돼지고기를 뜻하는 홀과 같은 의미인 포크 그리고 커틀릿(cutlet)의 ‘가쓰레쓰’가 결합해 ‘포크가쓰레쓰’란 용어가 등장했다. 그 후, 포크가쓰레쓰는 일본어의 돼지를 뜻하는 돈(豚)과 외래어 가쓰레쓰가 결합해 ‘돈가쓰레쓰’로 변천했고 최종적으로 돈가쓰(돈가스)로 정착하였다.
■일본식 ‘절충요리’ 특징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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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2년 가나가키 로분의 저서 ‘서양요리통(西洋料理通)’에서 ‘홀커틀릿’ 요리를 소개한 항목. 출처 ‘메이지 양식사의 시작’ |
일본식 돈가스 요리의 원조인 홀커틀릿이란 돼지고기 중 뼈에 붙은 등고기 혹은 로스 고기에 밀가루를 묻힌 뒤 소량의 기름으로 프라이팬에서 볶는 서양식 요리이다. 1895~1899년 도쿄 긴자의 렌가테이(煉瓦亭)에서는 이때까지 소량의 기름으로 부쳐낸 가열조리법 대신 많은 양의 기름 속에 넣고 튀긴 포크가쓰레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는 렌가테이의 2대째 운영자 기타 겐지로(木田元次郞)가 일본인 입맛에 맞는 요리를 목표로 시행착오 끝에 개발했다. 이 당시는 얇게 썬 돼지고기를 썼고 데미글라스 소스를 뿌려 익은 야채 및 빵과 함께 나이프와 포크로 먹었다. 도쿄의 쓰키치 아카시초 외국인거류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렌가테이의 포크가쓰레쓰는 ‘외국에는 없는 서양 요리’로 외국인 손님에게 인기가 매우 높았다. 이 시기 ‘절충 요리’ 식당들이 나타났고, 돼지고기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포크가쓰레쓰 같은 서양식 요리의 재료로 썼다.
포크가쓰레쓰는 1907년부터 유행해 다이쇼 시대(1912~1926년)에는 이미 양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21년 도쿄 신주쿠의 돈가스 전문점 오우로지(王ろじ)가 두꺼운 등심을 튀겨 젓가락으로 먹기 좋게 잘라 놓은 돈가스를 처음으로 팔았다. 그 후 1929년 도쿄 우에노(上野) 오카치마치(御徒町)에 있는 폰치켄(ぽんち軒)에서 시마다 신지로(島田信二郞)가 지금의 일본식 돈가스를 팔기 시작했다.
이때 탄생한 일본식 절충 요리 돈가스는 뼈가 없는 두툼한 돼지고기에 일본식 굵은 빵가루를 입히고, 많은 양의 기름 속에 넣어 튀기는 방식으로 새롭게 고안한 ‘딥 팻 프라잉’(deep fat frying)으로 씹으면, 고기와 함께 바삭하게 부서지는 빵가루 촉감이 살아있는 맛있는 요리다.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주고 포만감을 안겨주는, 아삭아삭하게 채를 친 양배추를 추가하고 일본의 쌀밥과 된장국과 함께하는 일품 세트 요리로 구성됐다. 포크와 나이프 대신에 일본인의 젓가락 사용에 적합하도록 돈가스를 미리 썰어 놓는 등 서민의 많은 아이디어가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용·절충·융합의 일본 문화
1932년에는 도쿄 우에노(上野)나 아사쿠사에 ‘라쿠텐(樂天)’등 돈가스 전문을 표방하는 음식점이 속속 개점하면서 도쿄 번화가에 돈가스 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물자 통제로 돈가스 붐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일본의 패전 뒤 1958년에는 돈가스 체인점 와코(和幸) 1호점이 개점했다.
일본 문화는 예부터 서양, 중국, 한반도 등 외부 문화를 받아들여서 자신의 문화와 절충하고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 높은 문화를 만드는 특징이 있다. 메이지 시대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과학기술뿐 아니라, 군국주의와 연계된 부국강병의 정책으로 서양의 식문화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일양절충요리’가 탄생했다. 그 하나인 돈가스는 서양의 홀커틀릿이 일본 식문화로 융합된 요리이다.
공미희 부경대 HK 연구 교수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