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거장 딸들이 펴낸 회고록
- 아버지 소박한 삶·가족애 추억

박수근(1914~1965)·장욱진(1917~1990)을 가장 곁에서 바라본 딸들이 아빠의 삶을 바라본 책을 냈다. 모두 한국 현대화의 거장으로 불리지만 ‘딸바보’이자 사랑받는 아버지였다.

경기도 덕소 시절(1963~1975) 화실의 장욱진과 아내 이순경 여사.(왼쪽), 창신동집 마루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박수근과 아들 성민, 둘째 딸 인애. 도서출판 삼인 제공

장욱진 화백의 딸 경수(75)는 가족을 사랑한 아버지의 면모를 소박하고 정감 넘치는 이야기들로 들려준다. 장욱진은 매일 아침 연필을 깎아서 필통에 넣어줄 만큼 자상했지만, 사랑이 과해 딸의 머리를 잘라준다며 예술혼을 억누르지 못하고 ‘전위예술’을 선보이는 바람에 딸의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저자가 첫 아이를 낳은 날에는 손을 쓰다듬으며 “경수야, 힘들었지? 이제 그만 낳아라”고 말했다. 아내 사랑도 각별했다. 시계·반지 같은 장식품은 늘 직접 제일 예쁜 것을 골라서 선물했고, 전시회는 항상 결혼기념일이 있는 4월과 아내의 생일이 있는 9월에 열었다.

장욱진은 그림이 크기에 따라 값이 매겨질 때 손바닥보다 작은 그림을 그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림을 나눠주기는 해도 팔지는 않았다.

저자는 “화가 장욱진을 아버지로 둔 탓에 힘들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생전에 딸에게 “나는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다만 그림을 통해서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박인숙(76)은 박수근이 가족을 부양하며 생을 마감했던 순간을 비롯해 그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오래 묵혀둔 일기를 꺼내 읽듯이 들려준다. 딸이 기억하는 박수근은 어머니더러 우스개로 ‘미국 사람과 사는 여인’이라 할 정도로 미남자였다.

당시 경제력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굉장히 좋은 집으로 옮긴 적이 있는데, 사실 박수근을 남몰래 흠모했던 주인아주머니가 어떻게든 연을 만들어 보려 수를 쓴 것. 그렇지만 도둑이 들자 어머니를 깨워 “도도도도도둑놈이 왔어” 말하며 턱을 덜덜 떨던 겁보였고, 대학생 딸에게 입을 크게 벌리고 “안쪽 어금니 사이에 뭐가 낀 것 같으니 잘 좀 파보라”며 엉뚱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박수근은 독학으로 시작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나 생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림에 사상이나 이념이 아닌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남기려 했던 탓이다. 특히 그가 사랑을 주고받았던 가족을 그린 그림에는 따스한 감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책장을 덮자 화가와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더 깊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들의 붓질 하나하나에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쏟는 잔정과 따스한 눈길이 느껴졌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