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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12> 제주 검은 쇠 '흑우'(상)

수탈·교잡의 흑역사…멸종 직전에 되살린 '제주의 검은 유산'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6-23 19:45:4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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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부터 제주서 키운 토종 한우
- 일제 때 식량·군수용으로 약탈·반출
- 日 '미시마 소' 와규의 원조이기도
- 도내 농장 30곳서 약 1300두 사육

- ‘한우개량사업’ 때문에 사라질 뻔
- 2013년 천연기념물 지정돼 부활
- 온몸 검은 털·체구 작으나 다부져
- 사육지별 뿔 형태 다르고 혀 까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150만 마리 이상의 ‘조선 소’를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조선총독부 ‘조선의 이출우’ 등의 자료에 의하면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살아있는 한우 150만 마리 이상이 일본으로 반출됐고, 죽어서 가죽으로 반출된 한우는 약 600만 마리로 추정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1) 김민수 사진작가가 제공한 제주도 토종 한우인 제주 흑우. 제주 흑우는 혀가 까맣고(2) 사육 지역마다 뿔의 형태(3)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일제는 반출해간 조선 소로 일본 내 식량 증산과 우수한 품종의 일본 소(和牛) 육종, 양질의 소고기를 확보했고, 가죽으로는 일본군의 피복·군화·배낭·혁대 등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데 사용했다. 기타 군수공장의 기계 동력 벨트로도 활용되었다.

그중 제주 흑우는 우수한 종자만 골라 일본으로 반출한다. 1925, 26년 201마리의 흑우를 일본 야마구치현으로 반출했는데, 전문가들은 당시에 건너간 흑우가 현재 일본 와규의 표준이 되는 야마구치현 하기시 ‘미시마 소(見島牛)’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 흑우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문성호 교수.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문성호 교수는 “일본 미시마섬(見島)의 ‘미시마 와규’가 1928년 천연기념물로 선정될 때 사진을 구해 살펴보니 사진 배경이 제주도였다”며 “이 사실만 봐도 ‘일본 천연기념물이 제주 흑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제주 한림면에는 일제강점기에 ‘다께나까’ 일본군 군용 통조림 공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제주 흑우를 군수용 식품으로 가공해 일본군에게 제공했다. 건강하고 우수한 제주 흑우는 육종(育種)으로, 가공식품으로, 가죽으로 활용되며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갔다.

제주 흑우(黑牛). 제주 말로 검은 쇠, 거문 쇠. 제주 흑우는 전신의 털 색깔이 검은색이고 체구는 작으나 다부지고, 끈질기며 역동적인 기질을 가진 우리 고유의 소 품종이다. 제주 흑우는 기원전부터 제주도에서 사육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 애월 고내유적지, 곽지유적지에서 발굴된 소뼈 DNA 분석 결과 현재 흑우의 DNA와 90%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왕조실록·탐라순력도 등 옛 문헌에 따르면, 제주 흑우는 제향 및 진상품으로 공출될 정도로 제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산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제향에 쓰이는 흑우는 더없이 중요한 제사에 바치는 물건이다’, ‘세종실록’에는 ‘고기 맛이 좋아 고려시대 이래 삼명일(임금 생일, 동지, 정월 초하루)에 진상품으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작한 ‘탐라순력도’에도 흑우의 사육기록이 남아있다.

일제의 흑우 수탈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제주 흑우는 어떻게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까? 제주 흑우가 멸종 직전까지 간 가장 큰 이유는 이승만 정권 시절 육량이 많은 외래종을 도입하여 기존 한우와 교잡·육종하는 ‘한우개량사업’ 때문이다. 당시 제주도에는 인도산인 브라만 품종과 미국의 산타 거트루디스 품종을 들여와 흑우와 교잡했다. 토종인 흑우는 자연스레 사라지고 우리의 기억에서도 멀어져 갔다.

축산진흥원 출신 문 교수는 제주 흑우 복원을 결심한다. 1986년도 소달구지를 끌던 흑우 수소에서 어렵사리 정액을 채취, 동결정액으로 보존을 한다. 한 번 채취하면 100마리 정도 수정이 가능하다. 1992년에는 우도에서 폐경이 된 늙은 암소 12마리를 찾아 불임 치료 끝에 수정에 성공, 새끼 4마리를 얻는 성과를 거둔다. 현재 제주 흑우는 제주도 내 지정농장 12곳 포함, 전체 30곳의 농장에서 약 1300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흑우 DNA는 제주대학교 박세필 교수가 복원하고 문 교수는 관련 프로젝트를 관장하고 있다.

현재 제주 축산진흥원에서 천연기념물로 보존하고 있는 흑우는 150~180마리 정도. 이런 노력에 따라 문화재청은 2013년 7월 제주 흑우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46호’로 지정한다. 천연기념물 제550호인 제주흑돼지보다 1년 앞서 지정됐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소재 ‘흑우 공동목장’에 제주 흑우를 만나러 간다. 현재 제주 흑우 80마리를 보유하고 있는 이 목장은 ‘하잣성’ 터에 소재하고 있다. ‘잣성’은 마소의 목축을 위해 나지막이 돌담 형태로 쌓은 성을 말한다. 마소가 뛰어넘지 못하도록 지은 성으로 제주목사가 관할을 한다. 1429년 세종 11년께에 조성했는데, 해발 200~300m에 조성된 것은 하잣성, 400~600m에 있는 것은 상잣성이라고 불렸다.

흑우와 마주한다. 매끈하고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에 미세한 근육들이 탄탄하다. 다부진 몸집에 역동적인 기질이 흘러넘친다. 김민수 사진가의 작품으로 본 흑우 그대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 앉아있는 모습 또한 점잖고 늠름한 기상이 엿보인다. 흑우는 다른 한우에 비해 몸집이 작다. 그러나 지능은 한 수 위다. 다른 종인 소와 싸우면 처음엔 힘에서 밀린다. 그러면 도망가는 척하며 상대 소를 언덕으로 유인한다. 그리고는 중력을 이용해 저돌적으로 돌진, 상대 소에게 큰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싸움을 한다.

흑우에 대한 또 하나의 에피소드. 자연에서 방목하다 보니 주변 공격에 송아지가 위협을 당할 수가 있다. 때문에 평소에 송아지를 덤불에 숨겨 놓는다. 그러다 인근의 까치가 울면 불청객의 출현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달려가 송아지를 보호한다.

특이한 점은 제주 지역의 사육지마다 뿔 형태가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뿔이 ‘위로 올라간 것’ ‘아래로 내려간 것’ ‘일자로 뻗은 것’ 등으로 대별되는데, 각각의 ‘상향각’ ‘하향각’ ‘일문각’으로 불린다. ‘상향각’은 제주 애월 지역, ‘하향각’은 서귀포 남원 지역, ‘일문각’은 산간 고산 지역에서 발견돼 복원됐다.

그 외에도 뿔에 하얀 무늬가 있는 ‘노각 뿔’, 뿔에 눈이 내린 듯 하얀 점이 박혀있는 ‘눈 박힌 소’ 등도 있다. ‘노각 뿔’ 소는 성실하고 일을 잘해 주인에게 돈 벌어주는 소라고 선호했다고 한다.

3일 된 흑우 송아지가 어미 곁에서 깡충깡충 뛰며 재롱을 부린다. 그런데 몸 색이 누렇다. 문 교수의 설명으로는 흑우 수정란을 한우 대리모를 통해 수정·출산하기에 처음에는 털이 황색이었다가 5개월쯤 되면 흑우가 된다고. 그래도 일반 송아지와 달리 코가 새카맣다는 차이는 있다. 처음에 코만 까맣다가 꼬리에서 등줄로 점차 까매지면서 검은 소가 된단다.

제주 흑우의 또 하나의 특이점은 혀가 까맣다는 점이다. 일본 와규 중에서 가끔 까만 혀가 발현되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도래소(한반도 소)와의 교잡’ 때문이라고 설명을 한다. 이래저래 일본 소에서 우리 한우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갖은 수탈과 배척, 혼종과 교잡의 역사 속에서도 이를 굳건히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제주 흑우. 그 삶의 내력이 제주 사람들의 신산하고 곤고했던 삶을 닮아 더 아리고 애틋하다. 그래서인지 제주 ‘검은 쇠’가 일본 와규를 뛰어넘는 그 날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일본 소의 조상이니 못할 바 없으리라.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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