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동화집·가극평 등 근거 5편 제시
- “1964년까지 활동”… 통설과 다른 견해

“시인 백석(사진)의 마지막 가명은 ‘리식’이다.”

박태일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최근 ‘근대서지’ 제21호에 ‘리식이 백석이다’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백석은 생전 ‘박일파’ ‘리세희’ 등 몇 개의 가명을 썼다고 알려졌는데, 백석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이름(리식)을 발굴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번역 동화집 ‘동물이야기’(1955), 경희극 가극평(1961)을 포함한 5편을 근거로 제시했다.

시인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부터 ‘천재 시인’으로 불렸고, 시 창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탁월한 언어감각과 빼어난 시 세계로 현대 한국 시단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해방 이후에는 북한에 남았는데, 1996년께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태일 교수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로 이어지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은 대중에게 친숙하다. 그는 또한 우리 시단에서 ‘시인들이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백석은 창작활동뿐 아니라 외서 번역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가명을 사용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와 관련해 박 명예교수는 최근 백석으로 추정됐던 가명들을 검토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리식’이라는 이름을 추가로 발굴했다고 밝혔다.

그가 찾아낸 새 가명은 백석 문학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단초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 예로 백석은 1962년 북한 문학 사회에서 사라졌다는 게 통설인데, ‘리식’이 백석이 맞다면 활동 시기는 1964년으로 확장된다.

박 명예교수는 리식의 1964년 창작 시 ‘물길 따라’에서 나타난 말 맵시가 백석의 언어 역량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물결 소리를 ‘처절썩’이라는 의성어로 담아내고, 모래로 이루어진 강가를 ‘모래불’로 적어 지역성을 드러낸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리식의 이름으로 발표된 가극평(‘시대적인 요구와 농민들의 지향을 진실하게 반영한 락천적인 작품-강원도립예술극장의 경희극 산울림을 보고’)에도 주목했다. 백석은 생전 시·소설·어린이문학·번역 등 다양하게 활동했지만, 가극 장르 연관성이 확인된 적은 없다. 박 명예교수는 1960년 4월 발행된 ‘문학신문’ 기사를 통해 백석이 극작가 박혁과 함께 단막 가극을 썼다는 사실을 찾아냈고, 리식이라는 이름으로 가극평을 썼을 개연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확인한 당시 문학신문 기사에는 “박혁, 시인들인 백석, 김윤식은 가극을 창작하였는바 백석은 ‘토끼 사양공’으로 이름 높은 장일순 동무의 자랑찬 생활을 내용으로 하는 단막 가극 초고를 끝내여 합평회에 회부하였으며”라는 내용이 나온다.

박 명예교수는 “백석이 특히 번역 활동을 할 때 가명을 많이 썼는데,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연구는 답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리가 더 필요하다”며 “앞으로 특정 가명이 드러내는 경향성, 의미 등을 추적하면 백석 개인뿐 아니라 북한 문학사 흐름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