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외 미술관 위주 전시 탈피
- 개인적 관계 다루는 등 결 변화

-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展
- 이미지 중첩 신작 18점 선봬
- 조현화랑 내년 1월 3일까지

홍순명 작가는 부모와 자식의 세대 갈등이 시대·환경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급격한 현대화로 서로 어긋난 가치관이 충돌하고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홍순명 작가.  조현화랑 제공

그의 신작 시리즈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는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시각화한다. 작품의 가장 안쪽에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 혹은 오래된 가족사진의 한 장면을 그리고, 그 바깥에는 작가 본인의 모습을 겹쳤다. 얼룩처럼 보이는 건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사건의 형상이다. 완성된 작품은 당연히 깨지고 어긋난 것처럼 보이는데, 작가는 그 분열된 모습이 바로 우리의 ‘현재’라고 이야기한다.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2005, 2020, 캔버스 위에 아크릴물감. 유채, 60.5x50cm 조현화랑 제공

부산 조현화랑에서 내년 1월 3일까지 홍순명 작가의 개인전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를 열고 1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관, 해외 갤러리 위주로 활동했던 홍 작가가 국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홍 작가는 그동안 난민, 세월호 등 시대의 아픔을 조명하는 작업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반면 이번 전시는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개인적 관계를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결이 조금 다르다. 홍 작가는 “3년 전쯤 이라크 작가 히와 케이 등과 만났는데, 그들이 죽음과 가까운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작업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나도 좀 더 진지하게 작품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에 1년간 작업을 멈췄다가 우선 가까운 가족 이야기부터 해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신작은 가족이라는 개인적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까지 폭 넓게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홍 작가의 작업에 많은 영감을 준 건 구순의 어머니다. “미대 진학, 장남에 대한 기대 등의 문제로 어머니와 많이 부딪쳤어요. 많은 가족이 세대 간에 이러한 갈등을 겪었을 텐데 모두 빠른 근대화, 현대화의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마다 최소 3개의 이미지를 쓴 까닭에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홍 작가는 가장 먼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부모님의 모습을 그리고, 그 위에 빔 프로젝터로 현대사의 한 장면을 투사했다. 다음으로는 이미지의 윤곽에 맞춰 남길 부분을 마스킹 테이프로 붙이고, 전체를 흰색으로 칠했다. 다시 그 위에 현재 자신의 모습을 유화로 그린 뒤 테이프를 걷어내는 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세 개의 이미지는 모두 온전하게 그렸지만, 테이프를 떼는 순간 얼룩처럼 남게 됩니다. 각자는 온전한 생을 살았으나 그게 합쳐지니 상처로 남게 됐다는 걸 의미하죠.”

현재 부산에서 신작 전시가 한창이지만, 홍 작가는 이미 다음 작업 구상에 돌입했다. 홍 작가는 “좋은 작품은 공감을 끌어낼 뿐만 아니라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시대의 레이어를 겹쳤다면, 앞으로는 시선의 레이어를 겹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서울 출신인 홍 작가는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으며,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와 파리 국립 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다. 2015년 전혁림 미술상을, 2016년에는 이인성 미술상을 받았다. 필리핀 마비니 갤러리를 비롯한 국내외 각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미국 뉴욕 주립대 찰스 왕 센터와 프랑스 아베이에 생 앙드레 현대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 전시에도 참여했다.

민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