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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익진 무비셰프7 영화 ‘패터슨’의 아담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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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아담 드라이버가 영화에서 대사를 할 때 영어발음과 목소리가 좋았다. 미국 사람에게 영어발음에 대해 좋고 안 좋고 하면 이상하지만, 나는 그의 발음과 목소리에서 여유와 다정함과 위로를 느낄 수가 있어 듣기 좋다.
영화 ‘패터슨’(Paterson, 2016년)에서는 아담 드라이버(패터슨 역)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자주 시 낭독을 한다. ‘패터슨’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영화 화면에 시 내용이 한줄 써지면 거기 맞춰서 패터슨이 낭독하는 장면을 말한다. 그러니까 영화 화면을 통하여 시각적으로는 시 내용과 배경을 보게 되고 청각적으로는 배경음악(단조로운 뉴 에이지 계열의 음악처럼 들림)과 낭독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어발음이 아주 정확하다. 고전 반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9년)의 주인공 줄리 앤드류스(1935년생)의 명확하고 듣기 좋은 발음도 생각난다. 대사 처리를 빨리 할 때 그들의 딕션(diction: 대사의 정확성과 유창함을 두루 갖춘 발음)은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 ‘패터슨’에서는 대사를 빨리 할 캐릭터가 아니다. 화 한 번 내지 않고 소리 한 번 지르지 않는다. 그야말로 식물 같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애완견 마빈이 패터슨이 적은 시가 가득한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 발겨 놓았을 때도 “네가 미워, 마빈(I don‘t like you, Marvin)” 속삭이듯이 한마디 할 뿐이다.
시를 쓰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영화 ‘패터슨’은 한 권 시집이고 매우 훌륭한 시 입문서다. 일상 속에서 시가 어떻게 창조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마을버스를 운전하며 틈나는 대로 조그마한 노트에 시를 적는 그런 광경을 떠올리기는 그리 쉽지 않으나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나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산 광복동·남포동 거리를 거닐다 보면 손바닥 반만 한 종이쪽지에 시인 것 같기도 하고 인생 잠언 같기도 한 글귀가 적인 인쇄물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많은 주변 상점에 일일이 나누어주는 남자를 목격할 수 있다. 내가 그를 본 것이 벌써 20년도 더 된다. 최근에도 그와 마주쳐 쪽지를 받았다. 그의 이름도 성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영화 ‘패터슨’의 배경이 되는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가 평생 내과의사로 일하며 살았던 곳이다. 잘 알려진 시집으로는 이 영화 제목과 똑같은 ‘패터슨(Paterson)’이 있다. 5부작이며 일상의 언어를 구사하여 장대한 서사시를 엮어냈다. 그의 시론은 과장된 상징주의를 배제하고 평면적 관찰을 기본으로 한 ‘객관주의’의 시(사물과 거리를 둔 묘사 위주의 시)를 표방하며 투철한 현실 인식과 인간미를 강조한다(환상과 상징이 배제된 시들).
그는 또한 그 도시는 풍경 가운데 있는 거인이며, 사람이라고 도시의 정의했다. 시집 ‘브뢰겔의 그림, 기타‘로 1963년 퓰리처상을 받은 위대한 시인이다. “나는 모든 예술은 지방적인 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오관이 그들의 재료(소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부산 예술은 부산만의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영화 ’패터슨‘의 짐 자무시 감독은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에 대한오마주로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윌리엄스는 그의 시로 독자에게 도덕이나 교훈을 가르치려 한 게 아니라, 그의 시속에서 사건과 사물을 추적하는 그의 시선을 통해 독자가 현실(The Real)의 아름다움을 보기 원했을 것이다. 이런 의도를 충실히 따르고 수행한 결과가 영화 ’패터슨‘이다. 다음의 시, ’‘Water Falls’ 는 짐 자무쉬 감독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Waterfall 이렇게 두 단어를 붙이면 폭포라는 뜻이 된다.
Water Falls 물이 떨어진다.
Water falls from the bright air. 환한 공기로부터 물이 떨어진다.
It falls like hair. 머리카락처럼 내린다.
Falling across a young girl’s shoulders. 어린 소녀의 어깨를 넘어 떨어지고 있다.
Water falls. 물이 떨어진다.
Making pools in the asphalt. 아스팔트에 웅덩이를 만든다.
Dirty mirrors with clouds and buildings inside. 구름과 건물들이 비치는 더러운 거울들.
It falls on the roof of my house, 내 집의 지붕 위로 떨어진다,
It falls on my mother, and on my hair. 나의 어머니 위로 떨어진다,
Most people call it rain.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비라 부른다.
물론 비를 표현한 시이지만, 폭포를 연상케도 한다. 영화에서 패터슨의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폭포이고, 폭포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을 까 먹고 가끔 시도 쓴다. 이 폭포는 패터슨 시의 상징하기도 하다.
위의 시를 낭독하는 인물은 어느 날, 패터슨이 일을 마친 뒤, 오른손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왼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털레털레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소녀(스털링 제린스· 2004년생)다. 소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 한쪽 다리와 펜을 까딱까딱 흔들며 노트를 펴들고 있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소녀는 엄마와 쌍둥이 동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패터슨이 소녀에게 정중하고 다정하게 엄마가 올 때까지 내가 같이 있어도 될까, 묻는다. 소녀가 그럼요, 대답한다. 소녀는 자작 시를 적은 비밀노트를 보여주며 패터슨에게 위의 시를 들려준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둘 사이 분위기가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귀여운 소녀가 패터슨과 빠이빠이 하고 난 다음, 잠시 멈춰 서서 패터슨을 돌아보며 Do you like Emily Dickinson? 예쁘게 묻는 장면도 잊을 수가 없다. 이 장면을 수십 번 돌려봤다.
작가주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짐 자무쉬(James Robert Jarmusch, 1953년생)는 컬럼비아대 영문과를 다니다 파리로 유학을 가 영화를 공부했지만, 원래 시인이 꿈이었다. 진지하게 시를 썼고 다른 시인과 교류했다. ‘타임’과 인터뷰에서 그는 존 애쉬버리, 데이비드 샤피로, 케네스 코치, 프랭크 오하라 등의 시인, 이른바 ’뉴욕 시파‘(The New York School)로 불리는 시인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뉴욕 시파가 내 예술의 대부”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들의 시는 도시적인 풍경이 가득하고 위트와 날카로운 섬세함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는다. 내가 아는 감독 중 시적인 이미지 구축에 가장 탁월한 감독이 짐 자무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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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익진의 무비셰프7-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속 카일로 렌으로 나온 아담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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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인 페터슨은 버스 노선처럼 단조롭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세밀하게 버스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을 관찰하고 버스 승객의 대화에 귀 기울인다(승객은 소수 민족들이다). 그리고 맥주 한 잔으로 하루 마침표를 찍는 바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버렛의 가짜 총, 자살소동을 제외하고)도 고만고만하다. 비밀노트에 쓰는 시도 마찬가지다. 크게 달라진 것 없지만 매일 조금씩 고쳐 쓰는 시, 패터슨에게 시는 반복과 작은 변주가 섞이며 완성되어 가는 삶의 일부다. (중요한 것 같다.)
패터슨의 반려견 불도그 ‘마빈’도 중요한 캐릭터이다. 마빈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재미는 반으로 확 줄어든다. 자무쉬 감독은 “그냥 평온한 이야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아담 더글러스 드라이버(Adam Douglas Driver, 1983년생)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출신. 인디애나폴리스 대학교 (편입). 줄리어드 스쿨 (B.F.A) 졸업. 2001~2004년 미국 해병대 복무 이력이 있다. 미국과 해외 등 모든 군대의 지부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비영리 단체인 Arts in the Armed Forces (AITAF) 설립자이다. 줄리어드 졸업 뒤 뉴욕에서 연기를 시작해서 브로드 웨이와 오프 브로드 웨이 연극에 출연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제이, 에드가’(2011)가 장편 데뷔작이다. ‘스타워즈:깨어난 포스“(2015년)에서 아마도 처음으로 나쁜 역, 악당 Kylo Ren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별로였지만,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만큼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상당히 주목받았다.
아담 드라이버 얼굴을 어떻게 표현할까 한참 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빈 페이지 또는 공터 같은 얼굴이다. 참 볼게 많은 얼굴이다. 다소 언밸런스한 얼굴이다. 그러나 자꾸 좋은 쪽으로 보게 된다. 눈은 큰 편인데 갈색이다. 코는 엄청 크다. 얼굴 형태는 삼각형에 가까운데 입도 무지 크다. 저 큰 입을 벌리면 한꺼번에 호떡 세 개는 들어가겠다 싶다. 그런데 웃으면 귀여워진다. 여성에게 인기 높은 편이다. 어떻게 보면 핸섬하다. 팔과 손은 얼마나 길고 큰지 농구공을 한 손에 잡을 수 있겠다. 키가 약 190㎝ 장신이다. 양복 핏이 좋다. 젠틀하다. 해병대 복무 시절 사진이 한 장 보이는데 애국심이 투철해 보인다. 군대 사진은 영화 ‘패터슨’ 도입부에서 볼 수 있다. 화면이 금방 지나가니 빨리 봐야한다.
영화 ‘헝그리 하트’(2014년)’는 아담 드라이버가 베를린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다. 우울한 영화였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음식 취향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의 모든 갈등과 불행은 아기에게 먹일 이유식 때문에 일어난다. 원작은 마르코 프란조소의 소설 ‘인디고 아이(The Indigo Child)’다.
‘인디고 차일드’는 미국 정신과 의사 R. 시글이 연구한 나바호 인디언 부족 특유의, 태어나면서 신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에서 전해졌다(나무위키 참조). 이 아이들 주위에 후광 같은 진한 푸른색(indigo) 기운이 감돈다는 데서 나온 별칭이다. 근거는 없다지만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긍정적 측면만 들춰보면 이렇다.
여러 생에 걸친 자기 과거, 전생 또는 외계인이었던 기억을 가족에게 말한다. 특히 독서와 수학적인 학습방식을 좋아한다. 흥미를 느끼는 것에 열중할 때를 말고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연민이 깊고, 죽음 또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에너지가 넘쳐난다. 기계적 사고보다는 창조적 사고를 선호한다. 한마디로 머리는 천재인데 행동양식이 굉장히 복잡해 어디로 튈지 짐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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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익진의무비셰프7 영화 ‘헝그리 하트’ 속 아담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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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헝그리 하트’ 로 다시 돌아가자. 여주인공 미나(알바 로르워처, 1979년생)는 임신하게 되고 어느 날 남편 주드(아담 드라이버)와 함께 병원에 간다. 근본적으로 의사를 믿지 않는 미나는 진단을 받고 나와 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점 보는 집에 들어간다. 거기서 들은 말이 ‘인디고 차일드’다. 미나는 자신의 아기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철저하게 믿는다. 그 점집 네온간판이 사이킥 리딩(Psychic Reading)으로 되어있어 우리와는 좀 다른 식 점집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영화 결말이 불행으로 마무리돼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주드와 미나의 결혼식 장면은 참 아름다웠다. 미나와 주드가 춤추는 장면에서 흘렀던 영화 ‘플래시댄스’의 주제곡(아이린 카라가 부른 ‘What a feeling’)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드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가 직접 이탈리아 말로 신부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가수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노래를 잘했다.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목소리였다. 이 영화의 음악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오스카 음악상을 받은 니콜라 피오바니가 맡았다. 노래가 좋아 노랫말을 받아 적었다.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죠. /비단결 같은 당신의 인사말/ 벨벳처럼 부드러운 당신의 감촉/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죠/ 당신은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여름의 폭풍우 같은 모습도 있지요/ 당신에겐 언제나 새롭고/ 색다른 모습이 있어요/ 난 그런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사랑합니다./ 나를 안아 주세요/ 당신의 새로운 모습을/ 내가 찾아낼게요. 내 사랑/ 당신은 얼음같이 차고 불같이 뜨겁죠 / 나를 소름 돋게 하는 당신의 입맞춤은/ 날 날아오르게 하고/ 내 가슴에 불을 지피죠/ 당신은 내게 너무나 소중해요.
아담의 노래 실력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까 말까 하다 결국 놓쳐버린 영화 ‘결혼 이야기’(2019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낭만적이고 섬세하고 젠틀하고 진지한 역할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냉정하고 철학적인 빌런(villain,악당), ‘카일로 렌’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을 펼쳤다. 아담 드라이버를 잘 몰랐던 사람도 카일로 렌은 기억한다. 아담이 변신한 또 한 편의 화제작 ‘로건 럭키(2018년)’에서는 그의 유머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다른 배우(채닝 테이텀, 다니엘 크레이그 등등)들 모두 망가진 모습으로 나온다. 이 영화의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캐스팅과 관련하여 아담 드라이브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맥스무비’ 인터뷰 일부 발췌)
“아담 드라이버는 조용하면서도 동시에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 그런 면모가 지미(채닝 테이텀)의 외향적인 에너지와 대조를 이루길 바랐습니다. 사실 오랜 시간 아담을 지켜봤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그가 TV 시리즈 ‘걸스’에 나왔을 때부터 그가 하는 모든 걸 지켜봤고(세계최고의 감독들로부터 러브콜 쇄도 중) ‘이 배우 진짜 괜찮다, 앞으로 잘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담은 언젠가 상을 받아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을 배우라고 생각합니다.”시인 ijj071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