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진의 무비세프 <14> 나오미 와츠
슬픈 눈동자와 청량한 미소의 배우, 나오미 와츠 (Naomi Watts)
리모컨을 누르며 유선방송 영화채널을 쭉 둘러보는 것이 버릇이다. 며칠 전엔 옛날에 보았던 영화 ‘페인티드 베일’을 다시 봤다. 나오미 와츠(1968년생)의 대표작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는 중국의 풍광과 나오미 와츠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지금까지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슬펐다. 슬픈 연기를 해서 슬픈 게 아니라 타고난 슬픈 눈동자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녀의 미소는 청량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웃을 때 가장 보기 좋다. 웃음은 상당히 신비로운 힘을 지녔다.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웃음의 매력에 이끌려가기도 한다. 웃음은 힘이 세다. 가만있거나 무표정할 때는 잘 모르겠는데 웃거나 미소 지을 때면 매력이 극대화되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래서 사람은 웃어야 한다. 억지로 웃거나 가장해서 웃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아무튼 나오미 와츠의 웃음에는 봄꽃 같은 화사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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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 와츠. 매혹 넘치는 모습과 깊은 내면을 모두 갖춰 그 속을 짐작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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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2006년)은 어머니 등쌀에 떠밀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하게 된 결혼을 유지하다 어떤 상황에 의해 부부가 점점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달과 6펜스‘의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의 ’인생의 베일‘이 원작이다. 허영과 욕망이라는 인간 굴레를 극복해가는 주인공 키티(나오미 와츠 분)의 힘겨운 성장을 통해 진정한 사랑, 용서와 화해, 삶의 의미를 되짚 사랑 이야기.
Painted는 치장의·허영적인, veil은 베일·면사포·가면을 뜻한다. ‘허영의 가면’ 정도의 의미다. 모옴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자 자전적 소설 ’인간의 굴레(1925년)‘를 살짝 들여다본다. 이 작품은 카타르시스의 문학으로 분류된다. 모옴 자신이 심한 말더듬이로 놀림받던 어린 시절과 부모를 잃고 방황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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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 와츠가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영화 ‘페인티드 베일’. 이 포스터가 낯익은 영화애호가가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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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어떤 공모의 희생자처럼 보인다. 선택해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이상적인 책들, 그리고 망각의 장밋빛 아지랑이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나이 든 사람들의 대화, 이 두 가지가 공모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삶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읽은 모든 것, 자기가 들은 것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인간의 굴레’ 중)
결국, 인간은 자기 방식대로 타인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시고하며 매일매일 창조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페인티드 베일’을 다시 보며 새롭게 느낀 것은 음악이다. 예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피아노 곡 ‘짐노페디’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Gnossiennes)’ 제1곡 ‘렌트’(Lent : 느리게)가 어느 순간 흘러나온다. 주인공 키티(나오미 와츠)가 자원봉사에 눈을 떠 보육원 아이들을 가르칠 때 원장의 간청으로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였다.
예전 시를 습작할 때 에릭사티의 ‘짐노페디’를 듣고 시를 쓴 적도 있고, 여러 면으로 잊을 수 없는 음악이다. 몇 개 투명하고 짧은 음으로 정말로 예측할 수 없는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노시엔느’ 이 곡도 탐욕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순수의 영혼을 갈구하는 피아노 음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키티의 모습과 아름다운 앙상블을 이루며 영롱하게 울려 퍼진다. 때마침 현장에 들른 월터(에드워드 노튼 분)는 키티의 연주를 들으며 운명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깊고 그윽한 눈길을 키티에게 쏜다.
영화의 중심 포인트는 키티의 불륜 장면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월터의 심리적 고통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이다. 상처 입은 월터는 복수의 심정으로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산골 마을인 메이탄푸 병원에 자원한다. 정작 불륜 당사자인 외교관 찰리(리에브 슈라이브 분)에게 버림받은 키티는 할 수 없이 월터를 따라간다. 그가 병원 일로 바쁜 동안 키티는 아무 하는 일 없이 감옥과도 같은 낡은 집에서 무료한 날을 보낸다. 키티는 월터의 복수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월터의 복수라기보다는 월터 자신도 세균학자로서 또 다른 일에 몰두하며 상처를 잊기 위해 중국 오지마을을 택한 것 아닐까. 선택은 옳았다. 척박하고 이질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료한 나날은 보낸 키티의 마음속에서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불꽃을 일으키게 되니, 윌터의 선택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 서로를 새롭게 보는 두 사람은 점차 진정한 사랑에 빠져들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 둘은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그 결실의 순간 월터는 전염병을 이기지 옷하고 죽게 된다.
월터는 키티에게 이곳을 어서 떠나라고 절규하지만, 진정한 사랑에 눈뜬 키티는 생명을 걸고 남편을 간호한다. 윌터는 그런 키티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말한다. ”용서해 줘.” “당신은 잘못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키티는 오열을 터뜨리고 월터는 아내의 곁을 홀연히 떠난다.
The Choir of the Beijing Takah의 ‘A la Claire Fontaine’ (맑은 샘물에서)
한가로이 거닐다가 맑은 분수를 보았네
깨끗한 물에 몸을 씻으러 들어갔네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참나무 아래 앉아 젖은 몸을 말리는데
높은 나뭇가지에서 작은 새가 지저귀네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노래 불러라 꾀꼬리야. 넌 마음이 즐겁구나
너는 웃고 있건만 나는 왜 이리 슬픈지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나는 그대를 가질 자격이 없어 끝내 잃고 말았네
장미 꽃다발에 눈이 멀어 너를 밀어냈지만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장미꽃을 다시 정원에 심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나뿐인 내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다면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헀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이 노래는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주제를 노래하는 프랑스 민요다. ‘페인티드 베일’의 엔딩과 함께 맑은 샘물처럼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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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 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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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이름 나오미 엘런 와츠(Naomi Ellen Watts) . 영국 켄트주 쇼어햄에서 태어났다. 잉글랜드인 아버지 피터 와츠(1946-1976년)는 로드 매니저 겸 사운드 엔지니어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을 담당했다. 웨일스인 어머니 머판위는 골동품 가게를 하며 의상 및 무대세트 디자이너였다. 이들은 와츠가 4살 때 이혼했다가 재결합했으나, 아버지가 1976년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웨일스에서 살다가 다시 잉글랜드로 왔다. 그녀가 14살 되던 해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오빠와 어머니와 함께 외가(할머니가 호주인)에서 산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배우의 꿈을 키워나갔으며, 이때 안 니콜 키드먼(지금도 절친)과는 함께 노스 시드니 여자 고등학교를 다닌 동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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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 와츠(왼쪽)와 니콜 키드먼. 두 배우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절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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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구 가정의 이혼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데 와츠가 4살 때 아버지가 마약중독으로 사망한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가족의 죽음은 남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긴다. 그것도 아버지의 죽음이다. 나오미의 눈동자가 선천성 슬픔으로 가득한 이유가 그래서일까.
나오미 와츠의 대표작은 무엇일까? 여러 출연작에서 여성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은 보여주었다. 강렬한 한 방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배우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또 다른 장점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기억에 담았던 영화가 ‘킹콩’(2005년)이었고,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년), ‘투 마더스’(2013년), 더 임파서블(2012년), ‘펭귄블룸’(2002년) 등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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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영화 ‘다이애나’에서 다이애나 영국 황태자비로 출연한 나오미 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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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던 객관적 평가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나오미 와츠의 출세작은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 2001년)’다. 미국의 느와르 미스터리 영화이며, 데이비드 린치가 감독·각본을 맡았다. 2001 칸 영화제 감독상, 2002 세자르상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오기까지 그녀의 연기생활을 순탄치 않았던 듯하다. 하물며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불안’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왓츠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링’(2002년)에 출연하기 전 십 년 넘는 세월을 숱한 오디션으로 흘려보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왓츠는 어머니·오빠와 함께 영국 전역을 집시처럼 떠돌다 호주에 정착하는 기나긴 여정을 지나오면서 각 지방 사투리를 익히는 기지를 발휘했다. “아마 그때부터 내 안에 있는 배우 기질이 드러났을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호주로 이민 간 뒤 어머니는 내가 칭얼거리는 게 짜증이 났는지 마침내 연기수업을 받도록 허락해줬다.” 그렇게 천성처럼 배우를 꿈꿨지만, 절친한 친구 니콜 키드먼과 달리 기회라는 눈동자는 유독 그녀만 알아보고 피해 가는 것 같았다. 키드만은 와츠에게 “괜찮은 역 하나, 정말 딱 하나만 있으면 그때부턴 일사천리”라고 위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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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 와츠의 출세작으로 꼽을 수 있는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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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난해한 영화다. 베티 또는 다이앤 역을 맡은 나오미 와츠의 모습을 얼핏 봐서는 여성답고 친절하고 선한 그녀의 원래 이미지로 인해 변한 게 없어 보이지만, 한편 그녀의 어두운 내면을 심도 있게 투영하고 있어 이전 영화와 차이점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다. 여러 면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다. 어찌 보면 감독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 만큼 애매한 부분이 많다. 꿈과 현실이 뒤섞여 중구난방처럼 보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서라도 읽어야 하나?
린치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꿈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는 의도는 알 수 있다. ‘한 여자(베티)의 현실과 비현실(꿈 또는 상상)을 꿈 또는 다른 세계에서 다이안이 깨어나는 것을 기준으로 양분했다’는 해석도 있다. 현실의 베티가 이루지 못한 욕망을 꿈 또는 상상 속에서 이루려 하는 것이 영화의 전반부라고 보는 시각이다.
다른 해석은 이러한 스토리라인 자체보다는 이 영화가 ‘권력에 대한 불평이며, 할리우드 허상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는 등등 다양한 해석이 난무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칸딘스키의 회화를 볼 때처럼 너무 해석을 하려 들지 말고 영화가 보여주는 이미지들 그대로 받아들이되 머릿속에 잘 기억하면서 관람하는 방식이 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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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킹콩’에서 나오미 와츠의 연기는 탁월했다. 그 탁월한 연기가 ‘킹콩’의 거대한 스펙터클을 탄탄히 뒷받침했다. 영화 장면 속에서 킹콩과 함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로 간 앤 대로우(킹콩 손아귀 속의 여인, 나오미 와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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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펭귄블룸’ 속 착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살짝 우회해 도덕적으로 상당히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인 적도 있다. ‘투 마더스’(Adore, Two Mothers, 2013년)’다. 우정 돈독한 엄마들의 모임에서 서로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두 엄마라는 설정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당시 40대로 매혹적인 미모와 섹슈얼한 이미지의 나오미 왓츠와 로빈 라이트는 극 중에서 관능적인 매력을 보인다. 나오미 왓츠는 여리고 감성적인 연기의 폭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던 고혹적인 섹시미를 방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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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킹콩’에 앤 대로우 역으로 출연해 열연하는 나오미 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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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무비셰프’를 쓰면서 배우들의 이면사를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들추어 보게 된다. 내가 관심을 가진 배우들에 관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쁜 소식들을 듣게 되었을 때의 실망감과 반대로 좋은 소식을 접했을 때의 즐거움이 있다. 나오미 와츠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게 돼 기쁘다. 그녀의 자선활동에 관한 보도다.
2006년 왓츠는 유엔 에이즈 합동계획의 친선대사가 된다. 그녀는 이 질병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도움과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높은 평판과 인지도를 사용했다. 와츠는 제21주년 AIDS Walk를 포함한 행사와 활동에 참여했다. AIDS Red Ribbon 시상식에 창립 회원으로 참석했다. 기금 마련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왓츠는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을 만났고, 2009년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에도 동참했다.
2011년에 나오미 와츠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배우인 휴 잭맨, 아일라 피셔와 같이 2010년 아이티 지진의 피해자를 돕는 기금 마련을 위한 뉴욕시 자선 폴로 대회에 참석했다고 전한다.ijj071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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