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공대 과학전공 김초엽 작가
- SF적 미래 그려낸 첫 장편 소설
- 예스24 ‘韓문학 이끌 작가’ 뽑혀
- 절망 속 휴머니티에 관한 이야기

2019년 김초엽이라는 소설가가 낸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문학계에 몰고 온 돌풍은 ‘괴물신인의 등장’이라는 흔한 표현으로 끝내버릴 일은 아니었다. 포항공대 생화학 석사라는 독특한 이력이 과학적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그의 소설에선 아이러니컬하게 진한 휴머니티가 느껴졌다. 장르소설 작가인 김초엽의 성공은 오랫동안 순문학이 중심이었던 한국 소설계의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실제로 예스24가 지난달 진행한 온라인 투표에서 수많은 소설독자들은 김초엽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꼽았다.

첫 번째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을 펴낸 김초엽 소설가. ⓒ정멜멜

그가 이번에 출간한 첫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은 그의 상상력이 짧은 호흡에만 유효한 게 아님을 보여줬다. 지난 단편들에서 우주와의 교신을 시도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지구의 ‘어떤 미래’를 펼쳐 보인다.

2129년의 지구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치명적인 부유물 ‘더스트’ 때문에 멸망한 뒤 재건된 상태다. 사람들은 더스트 시대 따위는 잊은 채 더스트로부터 인류를 구해낸 과학적 성취만 찬양한다. 아영은 ‘더스트생태연구소’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그는 한 시골 마을에서 모스바나라는 덩굴식물이 마구 증식해 인근 식물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신고를 받고 관찰하던 중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모스바나를 건져 올린다. 이 식물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그는 더스트에 관한 새로운 가설을 세우게 된다.

이야기는 2058년의 멸망한 지구로 돌아간다.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흔히 그렇듯, 힘을 가진 일부 인류는 더스트의 침투를 막을 돔을 건설하고, 돔 바깥에 남겨진 사람들은 수도 없이 죽어나간다. 그 와중에 더스트에 해를 입지 않는 인간, 이른바 ‘내성종’도 생겨나는데 돔 시티 사람들은 이들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잔인한 인체실험을 자행하기도 한다. 실험대상이 돼서 고통받던 자매 아마라와 나오미는 가까스로 탈출해 더스트로부터 안전하다는 소문의 숲속 마을 ‘프림 빌리지’를 찾아낸다. 이 마을의 핵심은 언덕 위 온실이다. 식물학자 레이첼이 온실에서 만드는 작물로 농사를 짓고 역시 그가 만든 더스트 분해제를 먹으며 마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한다. 레이첼은 마을의 리더 지수와만 소통하는데, 그가 큰 대가도 없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여성들로만 이뤄진 공동체 프림 빌리지는 구성원의 충실한 노동과 약속,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유지되는 작은 유토피아다. 레이첼이 재배하는 모스바나에 더스트의 독성을 중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이들 사이에는 갈등이 생겨난다. 마을을 침략자와 더스트로부터 지키며 지금처럼 은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모스바나를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 퍼뜨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뉜다. 배척당하고, 인체실험 당하고, 목숨을 위협받던 이들이 세상을 구원할 열쇠를 쥐게 되고 그 구원을 고민하는 것이다.

작가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에 관해 생각했다”며 “아마도,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고 밝히고 있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