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당시 부산군수기지사령관
- 피란민 돌보고 대학설립 등 지원
- 그의 삶과 선행 엮어 단행본으로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전쟁 참상을 딛고 일어서야 했다. 그 과정에서 부산은 유엔군 부산군수기지사령관 리차드 위트컴 장군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다. 이 책은 위트컴 장군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고자, 그가 보여준 빛나는 선행과 희망의 흔적을 모은 첫 단행본이다.

생전 한묘숙 여사가 남편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영정 사진을 품고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은 6·25 한국전쟁 시기 부산의 보육 시설을 방문해 아이를 품에 안은 위트컴 장군. 국제신문 DB

오상준 국제신문 편집국장이 위트컴 장군의 흔적과 생애를 돌아보며, 흩어져 있던 여러 자료를 선별해 ‘리차드 위트컴’이라는 책으로 묶었다. 저자는 사회부 차장이던 2011년 6월 위트컴 장군 관련 기사를 쓴 뒤 위트컴 장군이 부산을 위해 한 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뒤로도 자료를 찾고,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고, 장군의 선행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기사를 계속 썼다. 그 기사와 자료를 엮은 책을 읽는 동안 위트컴 장군에 대한 고마움이 절로 일어난다.

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부산 시민을 위해 위트컴 장군이 했던 일부터 알아보자. 피란민들로 북적이던 부산은 곳곳에 천막이 세워져 화재에 취약했다. 1953년 1월 국제시장에서 대화재가 났다. 11월에는 부산역전 대화재가 일어났다. 이 불로 6000세대 3만 명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재민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을 때 장군은 텐트 의류 침구류 식량 등 군수물자를 긴급히 지원했다.

장군은 꾸준한 지원을 약속하며 “이재민 중 누구라도 굶거나, 잠잘 곳이 없고, 진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을 것”이라고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이 일로 장군은 큰 고초를 겪었다. 군수물자를 함부로 지원했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미국 의회 청문회까지 불려갔다. 청문회에 선 장군은 이렇게 답변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장군의 말에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청문회에 소환돼 갔던 장군은 많은 구호금까지 받아 부산으로 돌아왔다.

장군은 피란민이 사는 현장을 자주 돌아보며 어려움과 불편함을 시정했다. 1954년 5월 피란민촌을 들러보던 중 배 부른 산모가 보리밭에서 아기를 낳는 장면을 목격하고 영도 피란민촌에 산원을 설치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감사할 일인데 당시 피란민들에게 장군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을까.

위트컴 장군은 부산대학교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1946년 서구 충무동에서 단과대학으로 개교한 부산대는 1953년 종합대학교로 승격했다, 그러나 종합대학교에 걸맞은 캠퍼스 부지를 못 구해 애를 먹었다. 장군은 경남도지사와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장전캠퍼스 50만 평 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대학 설립의 초석을 놓았다. 전차와 버스 종점이던 온천장에서 부산대 무지개문까지 도로가 없어 학생들이 불편을 겪자, 장군의 지시로 미군 제434 공병부대가 온천장~부산대 길이 1.6㎞ 진입도로를 닦았다.

메리놀수녀회가 무료 진료를 했던 ‘메리놀수녀의원’은 위트컴 장군과 미군대한원조(AFAK) 지원을 받아 지상 3층 160 병상 규모 종합병원으로 증축하게 됐다. 공사비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자 장군은 예하 부대원에게 월급 1%를 기부하게 했다.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부산 시내를 다니며 병원 건립 기금 모금 행사를 홍보했다. 이 사연은 미국 잡지 ‘라이프’ 1954년 10월 25일 자에 보도됐다.

이 책은 위트컴 장군이 부산에 베푼 구체적인 선행, 평생 동지였던 아내 한묘숙 여사와 가꾼 러브스토리, 장군이 남긴 흔적에 대한 재조명, 부산이 간직한 전쟁 상흔, 여러 전문가의 칼럼으로 보는 리차드 위트컴 등 6부로 구성됐다. 책을 읽는 동안 그때 위트컴 장군이 부산에 있었다는 것이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부산사나이’다운 면모를 보였던 리차드 위트컴을, 이제는 부산 시민이 기억하고 재조명하며 의리를 지킬 차례”라고 말한다. 리차드 위트컴 장군은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유일한 장성이다. 7월 12일은 위트컴 장군 추모 40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