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 없는 작업 번아웃 겪은 작가
- 동화 감성으로 비움의 삶 표현
- 23일까지 갤러리조이서 선봬

둥글둥글 북극곰과 뒹굴뒹굴 놀아볼까.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고개로 북극곰이 ‘달빛 산책’을 나섰다. 갤러리조이가 오는 23일까지 선보이는 ‘북극곰 작가’ 변대용의 초대전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달빛산책’이다.

변대용 작가의 작품 ‘집으로’. 갤러리조이 제공

변대용의 북극곰은 매끈하고 차가운 소재의 조각이지만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특유의 양감과 파스텔톤 색감이 서정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릴 때 읽은 책들이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까지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많이 봤어요. 특히 여러 나라 신화를 열심히 읽었죠. 동화적 감수성과 만화적 팝 성향은 이때 키워진 것 같아요.”

‘슬로우 라이프-달빛산책’은 지친 현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그리고 스스로 얻은 교훈이다. ‘작업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쉼 없이 작업해온 작가는 최근 ‘번 아웃’을 경험했다. 거절 못 하는 성격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어렵게 부탁했을 건데, 전시 거절이 어렵더라고요. 해야 할 일은 계속 쌓이는데 약속을 어길까 봐 무섭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요.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죠. 욕심을 좀 내려놓으려고 해요.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요.”

그가 지난해 작업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사고는 또 다른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지면서 모처럼 작업을 손에서 놓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제 사고를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어두운 밤 다치지 않도록 길을 비춰주는 달빛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달빛 산책’ 시리즈는 여기서 나왔다. 달빛 아래서 산책하거나 툭 걸터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에서 편안함과 여유, 안심이 느껴진 건 이 때문인 듯하다.

‘달과 곰’. 갤러리조이 제공

북극곰이 몸을 동그랗게 말아 뒹굴뒹굴 노는 듯한 모습의 작품을 보면 확실히 편안함·쉼·힐링의 이미지가 다감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것이 작가의 생활 모습인 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바삐 작업하고 많은 일을 한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성격이 그렇거든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등학교 때 일요일까지 미술학원에 갔더라고요. 그림이 너무 좋았으니까요. 손으로 만들고 그리는 작업을 좋아하니 쉴 틈이 없네요.”

어미곰과 새끼곰의 시선과 몸짓은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보편적인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누운 어미곰이 다리를 들어 새끼곰을 ‘비행기’ 태우는 모습은 우리 어릴 적 장면을, 작아진 어미곰을 등에 태우고 듬직하게 걸어가는 거대한 새끼곰 모습은 우리의 현재 또는 미래를 묘사한다. 어미곰의 품에 안겨 있거나 장난스러운 모습의 새끼곰 작품과는 또 다른 공감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제 이야기에요. 이제 부모님을 돌보는 나이가 된 거죠. 여전히 부모님께선 물가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하는 철없는 아들이지만요. 애착이 큰 작품입니다.”

설원을 잃고 푸른 초원에 살게 된 백곰이 보호색인 초록색으로 갈아입은 ‘그린베어’, 청춘시절 자신과의 싸움을 풀어낸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새끼곰이 사귄 친구 북극여우도 선보인다. 봄날 달맞이고개 갤러리에서 북극곰의 동화 같은 세상으로 산책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