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츠버스(ARTsBUS) 유럽 통신’을 3회에 걸쳐 격주 화요일 연재한다. 지난 12일 단발성으로 게재한 ‘성백 작가의 2023 아츠버스(ARTsBUS) 월드 투어 여행기’가 거둔 호응에 힘입은 결정이다. ‘아츠버스 월드 투어 프로젝트(ARTsBUS World Tour Project)’는 지난 2일 한 달 일정 ‘세계평화 예술대장정’을 떠났다. 2019년에 이은 제2차 대장정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행위예술가 성백 씨를 비롯한 예술가 6인으로 이뤄진 일행은 다음 달 4일까지 유럽 곳곳에서 공연·퍼포먼스·전시 등 예술 활동을 통해 평화·반전·생태·연대 메시지를 전한다. 일행은 부산에 본부를 둔 한국행위예술가협회의 회원들이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성백 기획단장·원정대장은 부산 금정구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머지’ 대표이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이 후원한다.

성백(오른쪽 ‘STOP’글씨 적힌 티셔츠 착용) 작가가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교회 벽에 박힌 2차 세계대전 당시 총탄 자국을 탁본한 작품을 현지 젊은이들과 펼쳐 보이고 있다. 아츠버스 제공

- 아우슈비츠에서 마주한 충격
- 이토록 조용하고 예쁜 곳에서
- 인류사 최악 폭력 자행됐다니
- 이 슬픔과 공포 사라지기 전에
- 추모공원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7월 5일 ‘아츠버스( ARTsBUS) 월드 투어 프로젝트’ 일행은 독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87년 전인 1938년 조선 청년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딴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평화와 생태, 전쟁 반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메시지를 담은 첫 퍼포먼스 공연을 했다. 관광객들은 내용에 관해 물어보고 아츠버스가 한국에서 어떻게 왔는지, 북한은 지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해 했다. 그날 저녁 늦게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 도착했다.

독일보다 물가가 낮은 폴란드에서 일행이 타고 다니는 아츠버스를 정비하기로 했다. 2019년 제1차 예술대장정 때는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한 끝에 독일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츠버스는 독일에 주차해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4년 동안 틀지 않은 아츠버스의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트렁크도 열리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된 ‘Auto-Plus’ 라는 차량정비소에서 에어컨을 고쳤다. 30대 젊은 사장은 스마트폰 번역기로 차량 상태를 묻고 수리해주었다. 주변 상가 사장님은 우리가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1.5ℓ 생수도 두 병이나 건네준다. 유지환 작가는 이번 여정이 끝나면 아츠버스 여행 에세이집을 내는 것이 목표라며 자판을 두드린다.

■광장에서 2차 대전 상흔을 보다

사람들 기억에서는 잊혀져도 그날의 흔적은 거리 풍경 깊이 새겨져 있었다. 광장과 오래된 교회 건물이 인상 깊다. 외벽에 선명하게 남은 총탄 자국이 보인다. 저 자국을 탁본으로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브로츠와프 시장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몇 곳의 특이한 보도블록, 맨홀 커버를 탁본을 통해 기록했다. 홍라무 유지환 심홍재 자신들의 예술작업을 했다. 홍라무 작가는 현지 바이올린 작가와 즉흥 공연을 선보였다. 배시아 심홍재 작가는 홍보 리플릿을 시민에게 나눠줬다. 모두 열정이 넘친다.

나는 낮에 봐 둔 오래된 교회 건물의 외벽의 총탄 자국을 탁본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작업하는 동안 20대로 보이는 폴란드 청년 한 무리가 끝까지 지켜봤고,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넨다. 자신들은 이곳에 살지만 건물 외벽에 전쟁 흔적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고 한다.

일상 풍경, 너무나 평범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우리 주변을 탁본으로 기록해 그 의미를 새롭게 거듭 생각해 보는 데 있다고 답했다. 풀 한 포기, 흙 한 줌에도 사연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모여 역사가 된다. 나는 잊혀져 가는 것을 기억하려 기록한다. 이렇게 평화로운 도시 모습에도 2차 대전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이곳 사람들도 곧잘 모르고 지나쳤다. 내 탁본에 어느 정도 총탄 자국 형태가 나타나자 적지 않은 사람이 인지하기 시작했다. 7월 6일이 저물었다.

■한국 작가 전시에 가다

독일 베를린에서 폴란드 브로츠와프로 향하는 아츠버스.

7월 7일 우리 페이스북을 본 강제욱 작가가 연락해왔다. 자신을 포함한 예술가 3인의 전시가 브로츠와프의 FOTO-GEN 갤러리에서 8월 13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FOTO-GEN 갤러리로 향했다. 강제욱 작가가 소개해준 큐레이터 올가에게 아츠버스 결과 전시를 2024년 이곳에서 할 수 있겠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행히 올가가 관심은 가지는 것 같았다. 2024년 일정표를 참고해 메일을 보내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명함을 교환했다. 폴란드에서의 전시를 상상해 본다. 우리는 아츠버스를 몰고 아우슈비츠로 향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트러커 중 아츠버스 번호판을 유심히 보던 한 사람이 반갑게 인사한다. 자신은 터키에서 왔다고, 형제의 나라 한국 사람 한국 차량을 만나서 반갑다고, 신기하다고 연신 악수를 청한다. 사실 나도 신기하다.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큰 고장 없이 2019년 11월 혹한의 유라시아 횡단에 이어 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달려주는 아츠버스가 오늘 따라 더 대견하게 보인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오후 늦게 아우슈비츠 인근 숙소에 도착했다.

■충격, 아우슈비츠

우리는 영화나 책으로만 알던 아우슈비츠를 견학했다. 충격과 공포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잔인 할 수 가 있을까? 아우슈비츠는 독일이 세운 수많은 절멸 수용소 중 하나이지만, 가장 크고 시설이 대부분 남아있어 가장 유명하다. 90만 명이 학살당한 트레블링카, 60만 명이 희생당한 베우제츠 등은 아우슈비츠 희생자 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절멸 수용소는 소련군이 도착하기 한참 전인 1943년 폐쇄돼 나치는 이 수용소들에 관한 증거를 완전히 인멸했고, 건축물이 남아있지 않다.

아우슈비츠에서 본 사진, 영상, 보존된 물품, 건축물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전시된 가스통은 작은 것 하나로 300명을 죽음으로 보낼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좁은 복도 양쪽 벽에 수용인들의 흑백 증명사진이 전시돼 있다. 일행인 권영일 사진가는 사진 속 누구도 비굴한 눈빛이 없고 모두 당당하고 비장한 표정이라고 말했다. 더 어두운 방으로 가니 사람 머리카락을 잔뜩 전시해두었다. 여성 수감자들의 머리카락으로 군수품 직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군인들의 담요로도 쓰였을 것이다. 잔인하고 섬뜩하다.

가장 섬뜩한 장면은 가스실을 지나면 시체소각실이 바로 옆에 있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을까? 한참 서서 바라보다. 지금 우리는 맑은 하늘과 푸른 나무의 그늘 아래서 날아다니는 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 당시에도 하늘은 맑았을 것이고 지금 서 있는 저 나무들이 그때도 서 있었을 것이다. 당시 그들에게 세상은 어떠했을까?

한적한 시골길 위로 할머니 한분이 자전거를 천천히 타고 있다. 차들은 할머니를 기다리거나 피해 운전한다.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인간을 향한 폭력이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수용소 견학을 마치고 우리는 인근 추모공원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지금의 이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이 감정 사라지기 전에

유지환 배시아 작가는 공동작업을 했다. 추념비에 쓰인 아우슈비츠라는 텍스트를 탁본 기법으로 녹색 손수건에 새겨 넣는 작업을 통해 멈춘 시간을 기록했다. 홍라무 작가는 작은 무덤을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했다. 심홍재 작가는 주변 작은 12개의 작은 돌을 모아 먹물을 찍어 12 방위로 놓고 ‘꽃이 된 넋’이라는 글로 표현하였다. 나는 내 그림자를 탁본해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의 한 부분인 아우슈비츠에서 내 그림자를 겹쳐보았다. 추모 공간이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참여 작가=기획단장 성백(시각·행위예술, 부산) 심홍재(시각·행위예술, 전주) 유지환(시각·행위예술, 서울) 홍라무(부토, 제주) 권영일(사진, 곡성), 배시아(시각·행위예술, 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