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옛 백제병원 자리 위치
- 북토크·글쓰기수업·편집자학교
- 알짜배기 프로그램들 큰 호응
- 지역민·관광객 둘 다 찾는 ‘핫플’

- 학교·도서관·작가 연결고리로
- 미래독자 ‘학생’에 가장 중점 둬
- 메이저 출판사들 벤치마킹 주목

메이저 출판사인 창비가 부산에 ‘공간’을 내겠다고 했을 때 지역 문화계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다. 지역 문화계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밝은 기대와 함께 일각에서는 ‘대형마트가 구멍가게까지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터져나왔다. 그렇게 3년.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난관도 넘어서면서 ‘공간’은 서서히 지역에 뿌리내렸다. ‘굴러온 돌’에서 불과 몇 년만에 ‘부산에 오면 꼭 가봐야 할 관광 코스’가 된 이 곳, ‘창비부산’을 찾아가봤다.

지난 2021년 6월 부산 동구 창비부산에서 열린 장류진작가와의 만남 행사 모습. 창비부산 제공

■근대유산과의 콜라보

지역에서 독자를 만나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나선 창비가 많고 많은 도시 중 부산을 선택한 이유는 두가지였다. 창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계간지 창작과비평 독자가 수도권을 제외하고 가장 많았고,. 지역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원도심의 중심인 중구 중앙동을 근거지로 정했는데, 계약을 목전에 두고 건물주와 의견차가 생기면서 무산됐다. 이후 급하게 찾은 곳이 지금의 옛 백제병원 건물. 이교성 창비 부산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신의 한 수’였다.

창비부산 내부 책 진열대. 창비부산 제공

거리두기가 극에 달했던 2021년 4월 창비 부산은 그렇게 문을 열였다. 100평 남짓한 공간은 창비 책 전시장이자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한다. 도서모임에는 무료로 장소를 대여하는데, 매년 100여개 모임이 300회가 넘게 이 곳을 이용한다. 특히 창비 부산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알짜배기’다. 작가 초청 강연, 신중년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수업, 공공도서관 사서를 위한 평론가와 함께하는 서평쓰기까지 대상도, 내용도 다양하다.

이 대표는 그 중에서도 2022년 진행한 편집자학교를 ‘진짜배기’로 꼽았다. 창비에서 일하고 있는 편집부장들이 직접 부산에 내려와 석달 동안 편집의 A부터 Z까지 풀어내면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20명의 수강생 중 마지막까지 소모임을 했던 5명은 이후 출판사 취직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매년 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요청이 많아 지난해엔 못했다. 올해는 다시 부산에서 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근대유산인 백제병원 건물과 문화계의 아이콘인 창비가 만나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한 것은 또 다른 성과다. 실제로 매년 3만 명이 이곳을 찾는데, 이 중 절반이 여행객이고 대부분 20·30대다.

■부산에 더 깊이

창비부산은 처음부터 미래독자인 학생에 집중했고, 이 같은 방향성은 3년 동안 흔들림없이 이어졌다. 교사들과 함께 우산책, 종이책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간을 학생 작품 전시장으로 내주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앞으로 부산을 찾는 여행객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부산 책을 만들어볼 참인데, 이 역시 교사·학생과 함께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부산의 역사 이야기를 하면 여태껏 부산에 살고있는 학생들도 놀란다. 부산 가이드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지역교육에 활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라며 “예를 들면 국어시간엔 관련 작품을 읽고, 미술시간엔 문학 이정표를 만들어보고, 사회·역사 시간엔 시대상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창비의 역할이 ‘고리’라고 했다. 문학길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혼자서 판을 펼치기 힘들 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실제 사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출판사의 역할이라는 의미다. 학교·도서관과 작가를 연결시켜주는 역할 역시 이 같은 연장선에 있다.

창비부산의 도전은 업계에서도 서서히 주목받고 있다. 서울에서 이미 북카페 등을 운영하는 다른 출판사들이 지역의 문을 두드리면서 앞서 나간 창비를 눈여겨 보고 있는 것. 이 대표는 “서울쪽 출판사에서 왜 거기로 갔느냐, 가서 뭐하느냐고 묻는다. 직접 부산에 출장와서 둘러보는 경우도 있다”며 “창비부산을 시작으로 다른 출판사들도 관심을 갖고 지역에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지역 독자들은 더욱 다양한 걸 경험할 수 있고, 콘텐츠도 더 다채로워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창비부산의 목표는 부산에 더 깊게 뿌리내리는 것.

“부산에 있는 출판사, 부산의 지역기업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독자들과 함께 결을 맞춰 부산의 콘텐츠를 연구해 만들고 홍보하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