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서 고교 국어교사 지낸 저자
- 이기대 해안가 ‘돌가시나무’ 등
- 일상서 만난 꽃을 글과 그림으로
- 인문적 통찰까지 담은 에세이집

‘들꽃 수업’. 들꽃 사진과 생태정보를 다룬 자연도감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들꽃과 문학의 세계를 오가는가 하면, 그림까지 함께 실린 독특한 에세이집이다.

부산 이기대 해안가 바위 위에서 자라는 돌가시나무. 심재신 그림. 창비교육 제공

심재신 저자는 부산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고, 성모여자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일과 생활의 틈 속에서 꾸준히 다양한 들꽃들을 만나 왔다. 산책길에서, 부산의 산과 바다에서, 학교 교정에서 꽃을 만나면 꼭 눈인사하고 마음도 나누었다. 꽃의 건강한 생명력과 고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자연을 담은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인식의 폭을 넓히고 삶과 자연에 대한 열린 감각을 한결같이 유지하고자 했다. 그의 첫 책인 ‘들꽃 수업’에 그 생생한 감각과 인문적 통찰, 이에 바탕한 자기 성찰의 기록을 담았다.

저자의 글, 시, 그림으로 만나는 꽃 이야기는 기존의 식물 소재 에세이나 교양서와는 다르다. 국어교사로 일해온 저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그림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미술교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글 시 그림의 조합이 어딘지 낯익다. 예로부터 시서화(詩書畵)를 아우르는 예술을 사랑했던 선비들이 떠올랐다. 그렇다. 이 책은 시서화가 어우러지는 예술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다.

이 책은 저자의 다양한 식물과 관련된 유년기 경험, 오늘날 생활 공간에서의 일상적 경험, 특히 부산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얻은 바닷가 식물에 관한 경험, 국어 교사로 재직한 학교 내 자연에 관한 경험을 펼쳐 보인다. 시간상 ‘유년기-중년기’를, 공간상 ‘고향-생활 공간-노동 공간’을 아우른다. 생활 공간은 평범한 도시 속 거주지와 인근의 ‘이기대’로 나뉜다.

바다와 숲이 만나는 자연공원 이기대는 부산 시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기대를 걸으면서 들꽃을 눈여겨 본 시민들은 이 책이 더 반갑겠다. 이 책에서 이기대는 바다와 숲이 만나는 독특한 지형적 특성에 따른 식생을 소개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저자의 안내로 이기대를 걸어보자. “이기대 해안가에는 맑은 날씨에 어울리는 식물들이 꽤 있다. 잎에서 광택이 자르르 흐르는 도깨비고비나 바닷가 돌 틈이나 바위 위에 자리 잡은 돌가시나무가 대표적이다. 돌가시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야산에서 자란다고 하지만 이기대 해안가만큼 널리 분포된 곳은 드물다. 하얀 꽃과 노란 수술이 예쁜 돌가시나무는 찔레나무를 닮았다. (…) 돌가시나무는 바닷가 들판을 기어가듯 자란다. 척박한 환경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녹색 잎의 색감이 강렬하고 가시가 긁다.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과 맞서 싸우던 스파르타의 최정예 전사를 그린 영화 ‘300’(2007)을 연상하게 한다. 강렬한 그리스 마초들이 휘두르는 창검처럼 돌가시나무의 가시도 억세게 뻗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저자가 그린 돌가시나무 그림이 나온다. 짙푸른 바다가 달려오는 이기대 해변을 내려다보는 바위 위를 억세게 뻗어 가는 돌가시나무. 하얀 꽃과 노란 수술도 보인다. 이제는 이기대 해안가에 가면 돌가시나무를 알아볼 수 있겠다. 더 이상 ‘이름 모를 들꽃’이 아니라, ‘이름을 아는 꽃’을 한 아름 안은 듯해 뿌듯하다.

저자는 “학생들과 생활하며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또 많이 배우기도 한다.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상호 작용이 곧 수업(…), 자연으로부터는 일방적인 배움이라 할 수업(受業)을 받아 왔다. 한편 자신의 일이나 공부를 위해 스스로 갈고닦는 것 또한 수업(修業)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수업의 의미를 확장하면 결국 인생은 곧 수업”이라고 역설한다. ‘들꽃 수업’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