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도와 랄프 헤들리 작품 등
- 18~19세기 일반 대중 풍속 비교
- 책 읽는 여인·대장간… 재미 쏠쏠

풍속화는 인간의 생활상을 그린다. 우리 국민에게 풍속화에 관해 물어보면,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김홍도’ ‘신윤복’이라는 이름은 나온다. 조선 시대 풍속화를 설명할 때 고정 출연하는 분들이다. 조선 시대에 풍속화가 있었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물론 다른 나라에도 풍속화가 있었다. 동시대의 조선(동양)과 서양에서는 어떤 유사한 사회상, 시대상의 그림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런 그림을 비교해 감상해 볼 수 있는 책이 눈길을 끈다.

김홍도 ‘벼타작’. ‘단원풍속도첩’ 조선, 종이에 수묵담채, 28×23.9㎝, 보물 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사진은 랄프 헤들리 ‘타작마당’. 1898, 캔버스에 유채, 121.3×161㎝, 랭미술관, 뉴케슬 어폰 타인, 잉글랜드. 동연 제공

장혜숙의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시대의 거울’은 넓게는 18~19세기 동서양, 좁게는 조선 후기와 당시 유럽 일반 대중의 풍속을 비교한다. 풍부한 그림 자료를 수록해 지루할 틈이 없고, 저자의 설명은 그림을 보며 미술관을 걷는 기분을 선사한다.

이 책에 수록된 조선과 서양 풍속화는 사람들 생활, 농사와 관련된 풍속, 소시민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말을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 대장간, 바느질, 축제, 우물가, 활쏘기 등 다채로운 문화를 대조해 가며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그림 속에 들어있는 세세한 장면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 재질이나 소재의 문화사적 배경까지 알려줘 단순한 두 세계 그림의 대비를 넘어선다. 같지만 다른 생활상, 그래서 같은 주제이지만 다른 분위기의 그림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홍도의 ‘벼타작’과 랄프 헤들리의 ‘타작마당’을 나란히 놓고 보자. 김홍도의 그림에는 깨끗한 자리를 깔고 거만한 자세로 누운 갓 쓴 남자, 지게 한가득 볏가리를 지고 오는 사내, 볏단을 치켜올리는 더벅머리 총각, 볏단을 태질하여 알곡을 털어내는 일꾼 등이 있다. 벼타작 장면이 생생하고, 인물의 표정과 동작도 실감 나게 묘사돼 있다. 랄프 헤들리의 그림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타작하는 방법도 다르고, 묵묵히 일만 한다. 비슷한 듯 다른 분위기의 두 그림이다.

이번에는 책 읽는 여인을 그린 그림이다. 윤두서의 아들 윤덕희가 그린 ‘독서하는 여인’과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 두 그림 다 아름답다. 그 곁에 조용히 앉아 함께 책을 읽고 싶다. 윤덕희의 그림은 파초 잎이 시원스레 드리운 여름날, 단정한 차림새의 여인이 의자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 모습이다. 책 읽는 여성을 그린 조선 시대 그림은 드물다. 그래서 그림도, 그림 속 여인도 귀해 보인다.

프라고나르 그림은 그의 ‘환상의 인물’ 시리즈 중 하나다. 우아한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푹신한 쿠션에 몸을 기대고 책을 읽는다. 이 그림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로코코 시대 그림 중 하나이다. 로코코 컬러로 여성스러움의 감성과 무드를 표현했다. 두 여인은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 살았지만,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조선과 서양 풍속화를 비교해 보는 마음을 이렇게 썼다. “‘사람 사는 모습이 뭐 그리 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서양인들의 풍속화를 찾아봤습니다. 조선과 비슷한 그림이 많아서 ‘그렇지,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거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니,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하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를 살펴보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