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 기록적 흥행한 ‘베테랑2’
- 출연제의 받고 부담 느꼈지만
- 감독 디테일한 설명에 설득돼
- 반사회적 범죄자 영상들 보며
- 시선을 고정하는 특징 찾아내
- 정해인표 ‘맑눈광’ 그렇게 탄생
- 액션 촬영 그야말로 악전고투
- 종합 격투기부터 주짓수까지
- 강도높은 무술·체력 훈련 받아
‘예의 바른 순수한 청년’ 이미지의 배우 정해인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다. 그것도 2015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후 큰 기대를 모으며 9년 만에 돌아온 영화 ‘베테랑2’을 통해 우리가 알던 착한 정해인의 모습을 지우고 악역이 된 것이다. 그의 변신을 축하하듯 지난달 13일 추석 시즌을 겨냥해 개봉한 ‘베테랑2’는 650만 관객을 넘어서며 700만 관객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정해인은 “어떤 평가를 내려주실지 너무 떨린다”고 했는데 이제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내려놔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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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2’에서 막내형사 박선우 역을 맡은 정해인. 그는 범죄자를 응징한다는 명목하에 사적 보복으로 단죄하는 인물을 연기하며 첫 악역 연기에 도전했다. CJ ENM 제공 |
재벌의 갑질에 통쾌한 철퇴를 가한 ‘베테랑’에 이은 ‘베테랑2’는 서도철 형사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가 합류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액션범죄수사극이다. 정해인은 서도철이 범인 잡는 것을 보고 경찰이 되었다고 말하며 맡은 임무에 열정적으로 임하지만 속으로는 비밀을 숨기고 있는 박선우를 연기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에서는 말랑말랑한 로맨스 연기를, 넷플릭스 시리즈 ‘D.P’ 시리즈에서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 그이기에 첫 악역 연기는 변신이었고, 모험이었다. 게다가 액션 장인인 류승완 감독 작품답게 강도 높은 액션까지 직접 소화하며 열정을 바쳤다.
전편에 이어 서도철 역을 맡은 황정민은 “악역을 하려는 배우가 의외로 없다. 정해인 배우가 악역을 맡아줘서 럭키비키였다”고 말했다. 류 감독도 정해인의 합류를 두고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해인은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다”며 “배우는 늘 도전하는 것 같다. 발전을 위해서 어떤 역할이든 다양하게 하는 것이 좋고, 그 작품이 ‘베테랑2’여서 금상첨화였다”고 화답했다.
정해인에게 ‘베테랑2’ 캐스팅 과정부터 캐릭터 분석과 액션 연기 등에 대해 밀도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나리오도 안 보고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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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2’의 한 장면. |
정해인의 악역 도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베테랑의 제작사이자 그의 이전 영화 ‘시동’을 제작한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류승완 감독의 아내이기도 하다)가 전화를 걸어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데 정해인 배우가 떠올랐다. 가장 어울릴 것 같다”고 했고, 정해인은 어떤 작품인지도 모른 채 외유내강 사무실로 찾아갔다. “류 감독님께서 ‘베테랑2’ 이야기를 해서 처음에는 너무 얼떨떨하면서도 기뻤다. 그러다 갑자기 부담이 밀려왔다.” 전작이 워낙 큰 흥행을 하며 화제를 모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작스러운 제안에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류 감독의 설명에 정해인은 조금씩 설득되기 시작했다. “류 감독님께서 영화뿐만 아니라 제가 연기했으면 하는 박선우 역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설명하시면서 감독님이 그려놓은 박선우와 제가 딱 맞아떨어진다며 꼭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특히 자신이 출연한 모든 드라마와 영화를 예를 들며 캐릭터에 대해 설명한 것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박선우에 대해서도 엄청 애정이 많으셔서 저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준비하고 관찰하셨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보진 못했지만 그 자리에서 ‘감독님 같이 파이팅 해요’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베테랑2’는 대중들에게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와 그 구분의 가치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범죄자를 응징한다는 명목하에 사적 보복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 SNS를 통한 살인 예고, 자극적인 범죄 소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SNS 이용자 등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릇된 정의감과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으로 사적 보복을 하는 박선우가 있다. “연기를 하는 배우 입장에서 박선우라는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 제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박선우가 너무 복잡하고 이상한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박선우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을 안 가리고, 필요하다면 선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사람을 도구로 이용한다. 게다가 ‘UFC 경찰’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순간적인 판단 능력과 고도의 무술 실력을 갖춘 소시오패스이다. “류 감독님께서 저한테 원하셨던 것은 관객분들에게 존재만으로도 어딘지 모르게 불쾌함과 껄끄러움을 계속 선사하는 것이었다. 저도 그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정해인표 ‘맑눈광’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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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철 팀에 막내 형사가 합류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베테랑2’. |
반사회적 성격을 지닌 빌런을 연기하기 위해 정해인은 실제 범죄자들을 프로파일러들이 상담하는 동영상을 찾아봤다. 그리고 이들 영상 속에서 박선우를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해 냈다. “범죄자들은 시선을 많이 움직이지 않더라. 심리학적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이상 사람의 눈을 5, 6초 이상 쳐다보면 불쾌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특히 정신질환이 있는 범죄자들은 사람 눈을 피하지 않았다.”
‘베테랑2’에서 유독 정해인의 클로즈업 장면이 많은데 바로 이런 점을 노린 촬영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맑은 눈으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광기를 보여주는 정해인표 ‘맑눈광’ 연기였다. “카메라가 완전히 빅 클로즈업으로 들어오니까 제가 안구를 조금만 움직여도 의미가 달라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위를 볼 때 아래를 볼 때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범죄를 저지를 때는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눈으로 뭔가를 다 표현하려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벽에 많이 부딪혔다.” 맑눈광 연기를 위해 계속 거울을 보며 다양한 눈빛 연기를 시연해 봤다. 평소에는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나오는지 신경도 안 썼는데, 이번에는 평생 볼 거울을 다 보며 준비한 것이다. “덕분에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연기할 때는 물론, 살면서 제가 지어보지 않았던 눈빛과 표정을 볼 수 있어서 놀랐다.”
■액션 배우 정해인
새로운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류 감독 영화답게 ‘베테랑2’는 강력한 액션이 펼쳐진다. 건물 옥상을 시작으로, 남산 계단, 마약 소굴, 터널로 이어지는 강력한 액션 향연은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타격감과 박진감을 선사한다. 정해인은 위험한 장면도 직접 소화하며 액션배우로 거듭났다. “촬영 전부터 액션스쿨에서 종합 격투기부터 주짓수까지 배우며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중요한 건 기초 체력이었다. 우리 액션이 한두 번 찍어서 OK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같은 액션도 10번, 20번까지 찍어야 하니까 체력이 중요했다. 달리기도 하고, 기초 체력도 준비를 많이 했다.”
오래 준비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힘든 점이 생겼다. 바로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겨울에, 그것도 밤 촬영을 했기에 건물 옥상과 남산 계단은 악전고투였다. “옥상 장면은 엄동설한에 바닥에 흥건하게 물이 있는 상태에서 비까지 계속 뿌려야 해서 힘들었다. 1주일 동안 녹초 상태로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남산 계단 장면은 갑자기 눈이 쏟아져서 밤새 기다리다가 철수하기도 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서 계단이 미끄러웠는데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촬영을 마쳤다. ”
마지막 터널 장면에서는 황정민과 맞대결을 벌였다. 황정민을 계속 몰아붙이다가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 “선배님을 숨 막히게 하는 장면에서 너무 몰입해 뒤통수를 계속 눌러 ‘컷’하면 너무 죄송했다. 제가 중요한 부위를 응징당할 때는 통쾌하다고 류 감독님이 정말 좋아하시더라.” 터널 장면에서 액션도 좋지만 마스크를 쓰고 차를 몰다 경찰 바리케이드에 막혔을 때 살짝 보여주는 눈빛을 꼭 봐줬으면 했다. “박선우가 ‘이제 돌아갈 곳은 없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연민을 표현했는데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그 눈빛이 잘 안 보여서 답답했다.”
첫 악역을 인상적으로 해낸 정해인은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정해인이라는 배우를 잘 몰랐거나 별로 관심도 없던 분들이 ‘베테랑2’를 통해서 저의 다른 작품도 한번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