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소년은 친구에게 “너는 천 개의 베개를 가졌대!”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가 소년의 생년월일을 캐묻더니 명리학을 공부하는 제 어머니에게 듣고 전해준 말이다. 소년의 나이 열다섯이던 겨울, 부산에서 첫 여행자의 길이 시작됐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낙동강 지나 국도변 주유소에서 만난 트럭 운전사가 마산까지 데려다줬다. 밤이 됐지만, 미성년이었던 소년은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문이 잠겨 있지 않은 방범초소를 간신히 찾아 들어가 잠을 청했다. ‘지구라는 행성 그 어느 곳에서든 내 한 몸 누울 잠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체득한 그날 밤. 천 개 중 첫 베개였는지도 모른다.

한 대륙에서 2~3년 살고 돌아와 여행기로 정리하고, 다른 대륙으로 이동-장기체류 후 이동하는 방식으로 지구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노동효 작가의 일곱 번째 여행서가 나왔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에 최적화된 여행기를 쓰는 저자는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 책은 2년 반 동안 남아메리카 대륙을 두 바퀴 이상 떠돈 이야기 ‘남미 히피 로드’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주축으로 아프리카, 튀르키예,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여행기다. 1960년대를 정점으로 소멸한 인류쯤으로 여겨졌던 히피의 건재를 알린 것이 전 책의 성과라면 이번 책에는 뉴노멀 시대 ‘여행의 쓸모’에 관해 묻고 있다.

낯선 곳에서 잠자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행가, 수많은 베개를 바꿔가며 지구별의 풍경을 몸에 새기는 작가는 도시나 국경뿐 아니라 시간을 넘나든다. 여행기를 통한 대리만족, 방랑을 글로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