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바다뷰 어우러진 작품 전시
- 해운대 OKNP서 내달 5일까지

하얀 캔버스 위에 탐스러운 자두 몇 알이 놓여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닌, 조각이 남긴 흔적이다. 조각으로 자두를 만들고, 자두의 형태를 파낸 뒤 맨들맨들하게 문질러 그림처럼 캔버스에 담은 것이다. 그렇게 파낸 조각은 또 다른 자두가 된다. 떼어낸 조각을 이어 붙여 입체적으로 태어난 자두. ‘사라지는 조각’과 ‘살아나는 조각’, 이 상반됨이 하나되는 순간이다.

OKNP가 주관한 황혜선 작가의 개인전 ‘상즉(相卽)_해석된 풍경’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맞닿는 손’. 빛과 그림자 효과를 더해 닿을 듯 닿지 않는 바다의 풍경을 구현했다. OKNP 제공

‘드로잉 조각’으로 유명한 황혜선 작가가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들을 부산에서 선보이고 있다. 오케이앤피(OKNP·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가 다음 달 5일까지 진행하는 황혜선 개인전 ‘상즉(相卽)_해석된 풍경’에서 작가의 색다른 시도를 만날 수 있다.

‘사라지는 조각(무화과)’

황혜선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석사를 마친 뒤 조각을 중점에 두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전시장 벽면에 검은색으로 도장된 얇은 선의 스테인리스로, 일상의 풍경을 담아내는 드로잉 조각으로 널리 알려졌다. 부산APEC나루공원과 부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뱅크, 서울시립미술관, 국회의사당,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전국 곳곳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친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차경’과 ‘상즉’이다. 한국의 정원 개념 ‘차경(경치를 빌리다)’을 생각해 바다의 경치를 빌려 바람과 소리, 빛, 시간을 표현해 냈다. 그것을 드러낸 방식은 ‘상즉’이란 단어가 잘 어울린다. 동양 철학에서 ‘서로가 서로를 포함한다’는 의미의 단어처럼, 서로 대립되는 개념을 통해 모든 것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는 조각’과 ‘살아나는 조각’이 대표적이다.

전시장 앞을 가득 채운 바다의 경치를 빌려온 작품들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바다의 바람 소리 빛 흐르는 시간을 1차원이 아닌 자신만의 해석으로 표현해 또 하나의 풍경을 그려냈다. 가벼운 바람을 무거운 소재인 메탈로 표현하고, 조명을 비춰 생긴 그림자로 빛을 드러냈다. 정지된 사물(정물)로 흘러간 시간을, 사라지는 소리를 무게가 있는 여러 개의 쇠구슬로 재연했다.

황혜선 작가는 “전시를 할 때 장소가 제일 중요한데 전시장의 바다뷰가 너무 강렬했다. 이 풍경을 어떻게 작품에 녹일까 고민하다 이 풍경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경치를 빌려오는 건 너무 단순해 풍경에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 빛 소리 시간을 형상화해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은 자연의 빛과 조명, 작품마다 생긴 그림자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며 따뜻함을 드러낸 작가의 성향이 곳곳에 담겨 있다. ‘소리의 무게’에 등장한 수십 개의 쇠구슬마다 ‘푸하하’ ‘깔깔’ 같은 단어가 새겨져 있어 마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작품 한켠에는 지인들의 일상에 쇠구슬을 절묘하게 배치한 사진들이 더해져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무거운 담론을 다루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우리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은유적이면서 따뜻한 전시다. 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051)744-6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