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는 한국인에게 존재감이 특별하다. 한민족 뿌리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학설은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신라·백제·고구려·가야의 후손인 한민족은 고대 시베리아 예술·문화·샤머니즘에 친연성을 느낀다. 일제강점기 연해주 등 시베리아 지역은 조선 독립운동과 깊은 연관을 맺었다. 현대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도전 정신을 자극하며, 경제·산업·물류 측면에서도 시베리아 비중은 커진다.

시베리아 겨울 풍경이다. 시베리아는 ‘혹독하지만 아름다운 땅’으로 표현되며, 동시에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

2025년 을사년 새해 첫 주를 맞아 주요 도서로 ‘시베리아의 역사’를 골라 본 데는 시야를 더 넓혀보고 싶은 의욕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시베리아’라는 지명이 주는 독특한 울림이 컸다. ‘시베리아의 역사’는 시베리아 토박이이며 이르쿠츠크 주립 기술대학교 역사학 과장인 이고르 블라디미로비치 나우모프가 원저자이다. 영국 리즈대학교 러시아 및 슬라브학 학과장 등을 지낸 데이비드 콜린즈가 영어로 편역했고, 정재겸 봉우사상연구소 번역위원이 그 편역본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이가 몸담은 봉우사상연구소에 관해서도 짚을 필요가 있겠다. 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면 “민족운동가·단군사상가 봉우 권태훈 선생(1900~1994)을 기리고 관련한 연구·공부를 하는 곳으로 나온다. 권태훈 선생은 1980년대 한국 문화계·독서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김정빈의 실명 소설 ‘단(丹)’에 나오는 실존 인물이다. 이 연구소는 한민족을 중심에 놓고 역사·문화·미래를 폭넓게 모색하는 책을 꾸준히 펴낸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종착역인 나홋카에 도착한 모습. 국제신문 DB

‘시베리아의 역사’는 정통 역사 학술서다. 원저자가 현지 대학생에게 들려준 강의 내용이 바탕이므로 까다롭지는 않지만, 독자에 따라 딱딱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부터 21세기까지 시베리아 역사를 근거와 사료에 입각해 엄정하게 설명해 가는 이 책에 스며들다 보면 흥미롭고 선명한 흐름을 차례로 만난다. 첫째, 책을 관통하는 관점이 온전히 ‘시베리아 관점’임을 느낀다. 행여 옛 소련의 계급투쟁 시각 또는 그 반대인 서구 중심 시선 일변도가 아닐까 지레짐작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다.

“나우모프 교수는 시베리아에서 교육을 받았고, 삶의 대부분을 시베리아에서 살아왔으며, 현재도 시베리아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영어 편역자 서문 중)

둘째, 그간 잘 몰랐던 시베리아 역사를 연신 만나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 고고학·역사학 자료, 사마천의 ‘사기’, 현대 경제·사회·지리·자원·정치 등의 지표까지 풍부하게 활용한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에 참여한 에르마크, 하바로프, 베링 등 많은 인물을 만난다. ‘알래스카’는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뜻하는데, 러시아가 미국에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팔 당시 정황도 접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일본의 위협에서 시베리아 안전을 지키기 위해 1907년 7월 17일 러·일 페테르부르크 협정을 맺는다. 그 협정 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조선은 일본의 ‘특수 이익(special interests)’ 지역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내몽골 지역은 러시아의 ‘특수 이익’ 지역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하였다.”(213쪽) 1905년 미국과 일본이 맺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여기서 반복된 듯하다.

이런 내용도 있다. “오늘날 시베리아는 러시아에 다음과 같은 것을 공급하고 있다. 전체 금 생산의 93.5%, 전체 알루미늄 생산의 83%, 전체 석탄 생산의 72%, 전체 셀룰로스 생산의 50% 이상, 전체 가스 생산의 90% 이상, 전체 석유 생산의 70% 이상, 전체 다이아몬드 생산의 95% 이상, 전체 전기 에너지 생산의 40% 이상.”(360쪽)